9.20.26 목양칼럼 (Words From the Pastor)
깜깜한 밤, 차디찬 기혼샘물에 머리를 넣었다. 차가운 기운과 함께 두려움이 밀려온다. 그렇지만 멈출 수 없다. 시온성으로 흘러들어 가는 물줄기를 찾아야 한다. 그래서 또다시 머리를 넣고 시온성 방향을 중심으로 더듬다 보니 물줄기가 보인다. “수구로만 시온성에 들어갈 수 있다”는 다윗의 말이 생각이 나서 기혼샘물에 뛰어들어 수구에 머리를 디밀어 본다. 그리고 수구 속으로 헤엄쳐 나아가려니 짙은 어둠과 턱밑까지 차오른 숨이 가져다준 두려움에 고개를 쳐들고 거칠게 숨을 내뱉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출 수 없다. 수구를 통하여 시온성에 들어가 문빗장을 여는 자만이 다윗 군대의 대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어둠 속에 머리를 집어넣고 빠르게 돌부리들을 잡아채며 앞으로 나아가려니 숨이 차오르고 얼마나 가야 할지 모르는 두려움이 밀려온다. "이러다 죽는 것 아니야?"라는 부정적인 생각 속에서 “나는 군대장관이야” “나는 할 수 있어”라는 생각으로 전환한 후 계속 나아가다 보니 시온성안 우물에 도착했다. 이것이 굳게 닫힌 시온성 문빗장을 연 요압의 이야기이다. 이번 주 생명의 삶에서 만난 요압의 돌파 이야기이다.
그리고 금요일에 다윗왕이 아둘람에서 베들레헴 연못물을 마시고 싶다고 하자 세 명의 장수가 가죽 부대를 들고 물 뜨러 간다. 블레셋 군대를 뚫고 길도 없는 숲길과 바위를 넘어 물 뜨러 간다. 이 또한 돌파 이야기이다. 돌파를 영어로 breakthrough라고 하고 히브리어로 바카(בָּקַע (bāqaʿ))라고 하는데 '쪼갠다, 터뜨린다'라는 뜻이다.
그래서 홍해가 갈라질 때도, 반석이 깨어져 샘물을 낼 때도 바카라는 단어를 쓴다. 무슨 말인가? 돌파가 있어야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금요 새벽예배 인도자이신 홍목사님께서 본문을 통해 예수님의 바카를 이야기한다.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신 것도, 십자가로 가신 것도 '바카'라는 것이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한 가지 생각이 내 머리를 친다. 나는 돌파가 내 몫이라고 생각했다. 요압처럼 결심하고 결심하여 돌파해야 기적이 있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예수님이 먼저 돌파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돌파를 인정할 때 나에게 진정한 돌파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내 청년기에 보았던 50대 후반은 인생을 다 산 사람 같았고, 걱정이 없는 사람들 같았다. 그런데 내가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온통 문제들이다.
나이가 들면 문제가 사라질 줄 알았는데, 문제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문제 앞에 내가 점점 작아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 인생이 여차하면 곧 무너져 버릴 것 같은 모래성 같다. 그러기에 걱정이, 두려움이 눈가는 물론 이마까지도 주름으로 깊어지게 한다. 그럼에도 “견뎌야지! “ ”돌파해야지! “라고 결심하며 인생을 발버둥 치게 한다.
그런데 예수님이 나에게 "내가 이미 돌파했어"
“네가 길을 만들 필요 없어.”
“네가 물길을 낼 필요 없어.”
“내가 이미 길을 열었으니 그 길로 올래"라고 하신다.
그래서 오늘은 돌파를 위해 발버둥 치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돌파하신 예수님을 붙드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요압은 어둠 속에서 수구를 통과해 시온성에 들어갔지만, 나는 오늘 예수님이 열어 놓으신 길을 따라 생명으로 들어가고 싶다. 내가 돌파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돌파가 나의 돌파가 되기를 소원해 본다.
그래서 오늘도 찾아온 걱정과 두려움 앞에 “주님! 내가 돌파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이미 돌파하셨습니다”“저는 주님만 따라가겠습니다.”라고 고백해 본다.
홍형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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