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3.26 목양칼럼 (Words From the Pastor)
내가 좋아하는 찬양 중에 “주님만이 왕이십니다”라는 찬양이 있다. 그래서 잠자리에 일어날 때는 물론이고 생각이 날 때마다 중얼거리곤 한다. 그런데 한 주간 주님이 “너에게 내가 진짜 왕이니?”라고 물으신다.
예수님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냐?”라고 물으시고, 디베랴바다에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고 물으 셨다. 왜 가이사랴 빌립보와 디베랴 바다에서 물으셨을까? 두 곳의 공통점이 있다. 가이사랴 빌립보는 헤롯대왕의 아들 빌립이 뒤로는 헬몬산이 있고 앞으로는 푸르른 평원이 펼쳐지는 곳에 새롭게 도시를 세우고 로마황제의 칭호인 가이사랴에 자기 이름 빌립을 붙여 세운도시이고, 디베랴는 헤롯 대왕의 또 다른 아들인 안티파스(Herod Antipas)가 눈앞에 갈릴리 바다가 펼쳐진 언덕 위에 도시를 세우고 “티베리우스(Tiberius)”라는 로마황제 이름을 붙여 티베리아(Tiberias)라고 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갈릴리바다가 아니라 디베랴 바다라고 불렀다. 당시에 내가 원한다고 황제의 이름을 아무 곳이나 붙일 수가 없다. 반드시 로마황제를 위한 신전이 있어야 하고, 로마제국의 위용에 걸맞은 도로나 건물등 제반시설을 갖추어야 했다. 그런데 이곳을 가이사랴 빌립보라고, 디베랴라고 불린 것을 보면 모든 전제조건을 갖추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로마황제를 위한 신전이 있고 로마황제는 이곳에서 사람들의 경배를 받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곳에서 “너희는 나를 누구냐?”라고 묻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다. 깊은 산골짝도 아니고 한산한 바닷가도 아닌 황제의 신전과 황제의 논리가 있고 찬란한 문명이 있는 곳에서 물으셨다. 다분한 의도가 있으시다.
예수님의 일행이 가이사랴 빌립보에 도착했을 때 예수님은 물론이고 모두의 몰골이 형편없었을 것이다. 옷은 낡아 헤어지고, 씻지 않아 냄새나고, 머리는 헝클어질 대로 헝클어져 걸인들 같았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곳에 사는 사람은 물론이고 로마황제 신전의 문지기가 더 세련되게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형편없어 보이는 예수님이 내가 누구냐고 묻는다. 실패 하고 도망친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함께 아침을 먹은 후 떠오른 태양이 티베리아 도시의 대리석으로 된 도시와 신전을 비추고 있을 때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신다.
요즘 내게 황제신전과 황제도시는 걱정이다. 지금 물질적으로 헌신하고 충성하는 6,70대가 떠나면 우리 교회는 어떻게 될까? 과연 3,40대가 이엠이 스페니쉬가 우리 교회를 잘 이끌고 나갈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다. 거기에다 요즘 힘들다는 성도님들의 소식들만 들려온다. 임파선 4기, 한국의 아버지가 대장암 4기에 간암 4기, 사업이 힘들다, 성도님들끼리 갈등이 있다는 소식들 뿐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초라하게 느껴진다. 이런 황제논리 앞에 주님은 내게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신다.
이 질문들을 묵상가운데 “지금의 6,70대도 3,40대일 때 흔들리고 연약 했다. 지금 같은 헌신이 없었다는 사실이 깨달아진다. 이랬던 분들이 하나님 만나고 은혜받으니 지금과 같은 헌신자들이 된 것이다. 무슨 말인가? 교회의 미래는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주님만이 왕이시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만이 왕이시고 주님만이 여전히 교회의 주인이라고 고백해 본다.
홍형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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