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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찬양 중에 “주님만이 왕이십니다”라는 찬양이 있다. 그래서 잠자리에 일어날 때는 물론이고 생각이 날 때마다 중얼거리곤 한다. 그런데 한 주간 주님이 “너에게 내가 진짜 왕이니?”라고 물으신다.

     

예수님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냐?”라고 물으시고, 디베랴바다에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고 물으 셨다. 왜 가이사랴 빌립보와 디베랴 바다에서 물으셨을까? 두 곳의 공통점이 있다. 가이사랴 빌립보는 헤롯대왕의 아들 빌립이 뒤로는 헬몬산이 있고 앞으로는 푸르른 평원이 펼쳐지는 곳에 새롭게 도시를 세우고 로마황제의 칭호인 가이사랴에 자기 이름 빌립을 붙여 세운도시이고, 디베랴는 헤롯 대왕의 또 다른 아들인 안티파스(Herod Antipas)가 눈앞에 갈릴리 바다가 펼쳐진 언덕 위에 도시를 세우고 “티베리우스(Tiberius)”라는 로마황제 이름을 붙여 티베리아(Tiberias)라고 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갈릴리바다가 아니라 디베랴 바다라고 불렀다. 당시에 내가 원한다고 황제의 이름을 아무 곳이나 붙일 수가 없다. 반드시 로마황제를 위한 신전이 있어야 하고, 로마제국의 위용에 걸맞은 도로나 건물등 제반시설을 갖추어야 했다. 그런데 이곳을 가이사랴 빌립보라고, 디베랴라고 불린 것을 보면 모든 전제조건을 갖추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로마황제를 위한 신전이 있고 로마황제는 이곳에서 사람들의 경배를 받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곳에서 “너희는 나를 누구냐?”라고 묻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다. 깊은 산골짝도 아니고 한산한 바닷가도 아닌 황제의 신전과 황제의 논리가 있고 찬란한 문명이 있는 곳에서 물으셨다. 다분한 의도가 있으시다.

     

예수님의 일행이 가이사랴 빌립보에 도착했을 때 예수님은 물론이고 모두의 몰골이 형편없었을 것이다. 옷은 낡아 헤어지고, 씻지 않아 냄새나고, 머리는 헝클어질 대로 헝클어져 걸인들 같았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곳에 사는 사람은 물론이고 로마황제 신전의 문지기가 더 세련되게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형편없어 보이는 예수님이 내가 누구냐고 묻는다. 실패 하고 도망친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함께 아침을 먹은 후 떠오른 태양이 티베리아 도시의 대리석으로 된 도시와 신전을 비추고 있을 때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신다.

     

요즘 내게 황제신전과 황제도시는 걱정이다. 지금 물질적으로 헌신하고 충성하는 6,70대가 떠나면 우리 교회는 어떻게 될까? 과연 3,40대가 이엠이 스페니쉬가 우리 교회를 잘 이끌고 나갈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다. 거기에다 요즘 힘들다는 성도님들의 소식들만 들려온다. 임파선 4기, 한국의 아버지가 대장암 4기에 간암 4기, 사업이 힘들다, 성도님들끼리 갈등이 있다는 소식들 뿐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초라하게 느껴진다. 이런 황제논리 앞에 주님은 내게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신다.

     

이 질문들을 묵상가운데 “지금의 6,70대도 3,40대일 때 흔들리고 연약 했다. 지금 같은 헌신이 없었다는 사실이 깨달아진다. 이랬던 분들이 하나님 만나고 은혜받으니 지금과 같은 헌신자들이 된 것이다. 무슨 말인가? 교회의 미래는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주님만이 왕이시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만이 왕이시고 주님만이 여전히 교회의 주인이라고 고백해 본다.

     

홍형선 목사

 
 
 

이번 주 중에 나와 연배가 비슷한 분하고 교제를 했다. 그런데 그분이 “목사님! 나이를 먹는 것이 기쁘네요”라고 하신다. 절대로 이런 말을 하실 분이 아닌데 이런 말을 하신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왜요?”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주님 만날 날이 가까워 져서 좋고, 전에는 참을 수 없던 것에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서 그렇다고 한다. 점점 잘 빚어진 반죽처럼 어떤 충격에도 빨리 원위치된다고 한다. 이분 입에서 이런 말씀을 하시다니… 놀랍다.

     

주일을 통해 1년 가까이 나누었던 로마서를 마쳐가면서, 로마서 16장에서 수많은 이름들을 만나게 되었다. 뵈뵈, 브리스가와 아굴라, 에배네도, 안드로니고와 유니아, 암블리아, 아벨레, 드루배나와 드루보사…

왜 이리도 많은 이름들을 나열하고 있을까? 마태복음(1장)과 역대기상(1-9장)에서 경험했듯이 이름뿐인 곳을 읽으려니 왜일까?라는 질문이 든다. 성경은 나에게 교훈 하기 위해 기록되었다(롬 15:4)는 말씀을 붙들고 자세히 읽고 묵상하다 보니 사도바울은 사람들의 이름만 기록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함께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 보인다.

     

뵈뵈에게는 “나의 보호자”,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나의 동역자”,

에배네도는 “처음 맺은 열매”,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는 “나와 함께 갇힌 자”,

아벨레는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받은 자”,

드루배나와 드루보사는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는 자”라고 부르고 있다. 그들의 직업이나 재산이나 사회적 지위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바울의 눈에 비치고, 마음에 느껴진 그들이 주님을 위해 어떻게 살았는지를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 이 말씀 앞에서 나 자신을 돌아본다.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더 나아가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기억하실까? 오늘 로마서 16장에 기록된 수많은 이름 중 가장 시선을 붙드는 이름은 “아벨레”이다. 이곳 외 그 어디에도 아벨레에 대하여 자세히 밝히고 있지 않아 아벨라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없다. 어쩌면 세상적으로 이렇다 할 이력이 없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아벨라를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라고 소개한다. 무슨 말인가? 세상적으로 화려한 이력이 없어도 바울의 눈에 비친 아벨레는 예수님이 인정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사실 내 안에는 세상에서 이력 한 줄을 더 쓰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리고 세상 이력 한 줄 더 쓰려고 무던히 발버둥을 친다. 세상에 한 개 더 남기고 드러내려고 싶어 몸부림을 치고 있다.

     

그러나 오늘 만난 아벨레는 나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깊게 생각하게 한다. 내가 남길 것은 명예도, 업적도, 재산도, 직함이 아니라 아벨레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받았던 사람”이라는 이 한마디를 남기고 싶다는 마음을 들게 한다. 자식들이, 다음 세대가 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어떻게 평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주님께서 나를 어떻게 평가하시는가? “가 중요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오늘 나는 세상의 이력 한 줄을 더하기 위해 애쓰기보다 눈 내 영혼의 이력 한 줄을 더 아름답게 쓰고 싶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두렵기보다 감사하고 싶다. 확실한 것은 어제보다 주님을 만날 날이 하루씩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 앞에 조금 더 욕심을 내려놓고, 조금 더 사람들을 이해하고, 조금 더 용서하고, 조금 더 사랑하고, 조금 더 주님을 닮아가면서 그날에 주님 앞에 서고 싶다. 그러기에 내 이름 뒤에 붙을 한마디를 생각하며 하루를 살아가고 싶다.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받은 사람.”

주님! 이렇게 살다가 주님을 만나게 하소서.

     

홍형선 목사

 
 
 

휴스턴은 비가 많이 오는 곳이다. 여름철에는 이틀이 멀다 하고 소나기가 내린다. 그래서인지 큰 나무도 많고 잔디가 푸르르다. 그런데 올해는 비가 안 온다. 특히 교회 근처로는 두 달 가까이 비가 안 온 것 같다. 그래서 화씨 100도 가까운 더위에 푸른 잔디가 갈색으로 바뀌기 시작했고 뿌리가 깊지 못한 나무들은 죽어가기 시작했다. 2주 전, 손바닥 같은 구름이 지나가는 모습과 목마름에 지친 초목들을 보며 비를 달라고 기도했다. 기도를 하는데 믿음이 생기며 비가 올 것 같았다. 비가 올 수 없는 상황이지만 비가 오리라는 믿음으로 기도가 나왔다. 그리고 얼마 후 신기하게 비가 왔다. 큰 비는 아니지만 5분 정도 비가 오는데 우리 교회 주위로만 왔다. 두 블록 떨어진 롱포인트 길에는 오지 않고 우리 교회 근처만 왔다. 기도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도 있네 “하며 지나쳤겠지만 기도했기에 응답이라 여기며 기뻐했다.

     

그래서 오늘은 휴스턴에 비 올 확률이 80% 이상이라고 하기에 더 기대했다. Weather radar를 보니 비를 가득 머금은 큰 구름이 교회 쪽으로 다가오기에 당연히 큰 비가 오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꽃과 나무에 물도 안 주었다. 그리고 내 기대에 부응하듯 비를 몰고 오는 바람이 분다. 그런데 비소식이 자꾸 미루어진다. 오후 1시에서 4시로, 5시로, 6시로 미루어진다. 그러더니 결국 살짝 흩뿌리고는 구름이 사라졌다. 정말 실망스럽다. 그런데 그때 내 마음에 “너는 하나님을 기다리고 있는가, 아니면 비를 기다리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생겼다. 나는 하나님께 비를 달라고 기도했지만, 기도한 후에는 하나님보다 레이더를 더 바라보았고, 하나님을 기다린다고 하면서 사실은 구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에스겔이 생각났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완성되지 않은 성전을 보여 주셨다. 문과 벽과 방과 뜰과 제단, 그리고 그 모든 치수를 보여주며 재어 보라고 하신다.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보여주신 것은 완성된 성전이 아니라 설계도였다. 이것이 믿음이 아닐까?. 믿음은 내가 원하는 일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 것이 아니라, 아직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의 설계도를 신뢰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구름은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일기예보도 바뀌고, 레이더도 변하고, 내 감정도 변하지만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내게 “구름을 보지 말고 나를 보라 “고 하시는 것 같다.

     

비가 오면 하나님께 감사하고, 비가 오지 않아도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해서 하나님의 설계가 없는 것도 아니다. 오늘의 비처럼 내겐 간절히 기다리는 것들이 많다. 그러나 구름만 바라보듯, 내가 간절히 기다리는 것만 바라보며 웃고 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하나님의 설계도를 바라보아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은 나를, 우리 교회를, 우리 가정의 미래에 대해 하나님의 설계도대로 만들어 가고 계신다는 사실 앞에 하나님만 신뢰해야 한다.

     

그래서 늦은 밤에 물 호스를 연결하여 목말라하는 나무들에게 물을 주고 있다.

     

"우리는 주 안에서 잘될 수밖에 없다"

     

홍형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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