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복음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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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방문할 때마다 서울 합정동에 있는 ”외국인 선교사 묘지“나 전남 신안군 중도에 위치한 “문준경전도사 기념관“과 같이 복음 때문에 삶을 드린 선배들의 흔적을 찾아 나서곤 한다. 몇 해 전에는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죽원리교회(현 대원교회)를 방문했다. 우리 교회 송형섭 장로님의 모교이다.
한국이 일제에서 해방한 후 어렵게 한국정부가 수립되었지만 일제의 잔상들이 사회 곳곳에 있었다. 그중에 하나가 국기배례이다. 마치 일본 천왕 앞에서 절하듯 국기 앞에서 절하는 것이다. 그런데 죽원리교회 주일학교에서 국기이든 그 무엇 앞에서 절 하는 것은 신앙 양심에 위배되는 우상숭배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그 다음 날 학생들은 학교에 돌아가 아침조회시간에 모든 학생들이 국기 앞에 절할 때 주일학교에서 배운 대로 국기배례를 거부하고 곧곧히 서있게 된다.
그때 학교는 국기는 일제와 싸워 이긴 조선의 상징이고, 반공산주의에 대한 상징인 태극기 배례를 거부했다면서 42명의 학생을 퇴학처리하고 담임목사님과 부장집사 등 교사들을 경찰서에서 취조했다. 이것이 교단 총회에 전해지고 총회차원에서 국기배례 대신에 주목례(가슴에 손을 얹는 것)로 바꾸어 달라는 탄원서를 올리자 이승만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여 지금과 같은 주목례로 바뀌게 된다. 주기철목사님 등 수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이 못해낸 국기배례 거부를 42명의 주일학교 학생들이 해낸 것이다. 이 당시 죽원리교회 주일학교 부장집사님이 송형섭 장로님이다. 송장로님은 국기 배례가 주목례로 바뀌는 역사적 현장 중심에 있던 분이시다.
이런 장로님이 지난 수요일 새벽에 99세의 일기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일평생 타협 없이 신앙의 길만 걸어오신 장로님이 모두가 가고, 가야 할 그 길로 가신 것이다. 소천 3일 전, 늦은 밤에 방문했다. 제 목소리만 들려도 반가운 표시를 하시던 장로님이 미동도 없다. 깊은 잠을 주무시는 것 같다. 그래도 말씀을 전하고 천국에서 만나자고 했더니 눈을 껌벅이고 반응하신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예수님 만나면 우리 교회를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사실 교회 안에 아프신 분도 많고, 사업 등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많다. 그래서 예수님께 우리 교회를 알려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이렇게 장로님과 작별인사를 하면서 부모의 삶을 생각해 보았다. 장로님처럼 우리의 부모님들은 일제를, 해방을, 6,25를, 보릿고개를, 이민을, 이민자의 삶을 신앙으로 살아내셨다. 그리고 자녀들과 다가오는 세대들에게 모든 것을 주시길 원하셨다. 이 길을 살아내시느라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까? 그런데 임종순간에도 자식들은 “예수님 만나며 기도해 달라고”라고 부탁한다.
역사적으로나 교회사적으로 교회가 지금같이 풍성하고 편할 때가 없었던 것 같다. 부모님들의 충성과 헌신의 결과이다. 이제 한분 한분 천국으로 가다 보면 어느 날 내 차례도 올 것이다. 나는 송장로님처럼 멋지게 살다가 멋지게 죽을 수 있을까? 그리고 자녀들에게 신앙의 유산을 물려줄 수 있을까? 천국에서 잔치가 있을 것 같다. 믿음의 사람이 왔다면서 큰 잔치가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장로님이 벌써 그립다.
그리움 대신에 장로님처럼 멋지게 살아내야 하는데…
주님! 살아낼 힘과 죽을힘을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