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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일기 4월 13일

     

목회가운데 감사한 것은 변하는 성도님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남자 성도님들이 변하고 있다. 강단 위에서 예배를 드리다 보면 눈물을 닦는 남성들이 보이고 손을 높이 들고 찬양하는 남성들이 보인다. 이 사람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변하고 반응하고 있다. 이런 모습에 나 또한 감동하여 눈물을 흘린다. 그래서 우리 교회 예배에는 눈물이 있다.

며칠 전 아내가 이렇게 말한다. 변하는 남성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을 아느냐고 한다. 그러면서 이분들의 특징은 ”아내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말이 진짜다.

대개 같이 신앙생활을 시작했어도 아내가 먼저 하나님을 경험한다. 아내가 하나님을 경험하고 나니 하나님을 모르면서 교회만 나오는 남편이 불쌍하다. 그래서 예배 때는 물론, 시간 날 때마다 남편의 영혼 구원을 위해 기도한다. 그리고 이 모습을 남편이 본다. 자기를 위해 흘리는 아내의 눈물을 본다. 그 순간 아내가 고맙다는 마음과 아내를 위해서라도 하나님을 만나고 싶다는 갈망이 생긴다.

마음의 문을 연 것이다. 마음의 문이 열리자 예수님께서 기다리시기라도 하신 듯 열린 마음의 문으로 들어가 일하시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그의 예배와 삶의 자세가 바뀌기 시작한다.

     

올여름에 있을 단기 선교기금 마련을 위한 Crawfish boil이 있다. 대형 천막을 치고 떡볶이, 오뎅국, 붕어빵… 등 음식 부스를 만들고, 요리하여 판매하기 위하여 100여명이 분주히 움직인다. 그런데 그 흔한 큰소리? 하나 없이 기쁘게 일하고 있다. 공동체가 변한 것이다.

교회를 사랑하다 보니 변한 것이다

사랑하면 변한다.

사랑이 능력이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라” 

     

홍형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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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일기 4월 6일

     

교회를 사랑하여 떠나려고 했다. 21년간 섬긴 교회가 홍형선목사의 교회가 아니라 주님의 교회라고 선포하고 싶어 떠나려고 했다. 그래서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 주시는 부흥을 보고 싶었다.

정말 모든 민족, 모든 세대, 모든 언어 가운데 부어주는 주님의 부흥을 보고 싶었다. 그런데 성도님들께서 우리 부부를 보낼 준비가 안 되었다. 우리의 떠남이 사랑하는 교회에 상처를 줄 것 같다. 그래서 다시 남기로 했다.

떠나려는 것도, 남는 것도 사랑해서이다. 사랑에서 출발한 순종이다. 그런데 개운치가 않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기쁨이 없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성도님들도 아파한다. 얼마나 아픈지 어떤 분은 “꿈속에서 나와 치고받고 싸웠다”라고 한다. 또 어떤 분은 제가 가려던 Tacoma시가 생각이 나서 Toyota Tacoma 트럭도 싫다고 한다. 성도님들도 상처를 받은 것이다. 분명히 하나님이 주신 마음에 순종했는데, 순종의 결과가 여기저기 상처뿐이다. 왜 그럴까?

그래서 고민하며 기도했다. 어느 순간 나의 순종이 섞인 것을 알았다. 순종한다고 했지만, 나의 순종에는 “나는 21년 목회한 교회도 떠날 수 있다”는 교만함과 “이제는 시원한 곳에서 살고 싶다”는 타협함이 있었다. 그래서 순종 속에도 기쁨이 없고 성도님들에게 상처가 되었던 것이다.

     

어제 금요예배시에 앞자리에 앉으신 84세 된 권사님이 보였다. 밤운전이 어려워 작년부터 금요예배에 못 오셨는데 내가 사임을 보류한 후부터 다시 나오신다. 아마도 나에게 힘이 되고 싶어 각오하고 나오시는 것 같다.

내가 뭐라고…. 울음이 나오며 부끄럽다. 그래서 공개적으로 나의 섞인 순종을 고백하고 회개했다. 그러자 무거운 무엇이 사라진 것 같고 영혼 깊은 곳에서 기도가 터지는 것 같았다.

     

하나님은 사람의 순종으로 일하신다. 그런데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는 말씀에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데리고 떠났듯 우리의 순종은 늘 섞여있다. 하지만 신기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섞인 순종을 통해 일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네 순종이 섞인 것 알지? 하면서 드러내신다. 그때 회개하는 자에게는 다음 일을 맡기시지만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는 침묵하신다. 이런 면에서 순종이 위대하듯 회개도 위대하다. 아니 은혜이다.

     

오늘 나에게 회개할 마음을 주신 하나님이 고맙다. 그리고 모든 성도님들을 꼭 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고맙고 사랑스럽다.

     

홍형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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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일기 3월 23일

     

나는 교회와 함께 울고 웃었다. 그러기에 휴스턴 순복음교회는 나의 전부이다. 내가 죽어 교회가 산다면 죽을 수 있다고 감히 말해본다.

나는 우리 교회의 부흥을 보고 싶다. 모든민족, 모든세대, 모든언어의 비전 속에서 부어지는 부흥을 보고 싶다. 그래서 사임을 결정했다. 한 사람, 예수님의 순종으로 모두에게 구원이 왔듯이 나 한 사람의 순종이 우리 교회의 부흥으로 연결되고, 특히 다음세대에게 모델이 될 것 같아 한 달 이상 고민하다 사임을 결정했다. 가치 있는 일이라 여겨 결정했지만 내려놓음이 쉽지는 않았다.

     

내가 사임한다고 하니 여기저기서 말린다. 교회를 걱정하는 소리들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목사님이 지쳐서 그렇다, 휴가가 필요하다”라고 한다. 나를 생각해주는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말이 거슬렸다. 나의 고민을 조금도 이해 못 하면서 마치 나를 울고 보채어 알사탕을 얻는 어린아이처럼 말하는 것 같아 화가 났다. 그래서 분을 내면서 내가 왜 화를 내지? 내가 화를 내는 이유가 무엇이지? 하며 이 감정을 붙잡고 늘어졌다.

마치 살갗에 찔린 작은 가시처럼 이 감정을 흔드니 아픔이 느껴진다. 쿡쿡 찌르는 느낌이다. 그래서 계속 흔들었더니 순종 속에 감추어진 내 의가 보였다. ”나는 너희와 다르다. 나는 21년간 섬긴 교회도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나의 의가 보였다. 그리고 내 속에 감추어진 두려움도 보였다. 나의 한계에서 오는 두려움과 두려움에서 오는 피곤함도 보였다. 그래서 믿음 없음과 내 안에 섞인 부분을 회개했다. 그럼에도 가시를 계속 흔들다 보니 ”성도님들이 왜 나를 붙잡지?“ 라는 질문이 생겼다.

교회의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염려임을 알지만 ”진짜 나를 붙잡으려는 이유가 무엇인지?“가 궁금해졌다. 그 순간 지금의 익숙함과 평안함을 유지하려는 욕심은 아닐까? 십자가 없는 부활만 꿈꾸는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우리 교회를 향해 “나는 거룩한 신부를 원한다”라고 하시는 것 같다.

     

교회를 사랑하여 떠나려 했는데, 떠남으로 교회가 상처를 받을 것 같아 떠남을 보류하기로 했다. 떠남만큼이나 어려운 결정이나 이런 나에게, 우리 교회에게 예수님은 신부의 영성을 원하신다. 휴스턴순복음교회는 신랑이신 예수님을 향한 신부들이 드리는 사랑의 고백으로 가득 찬 곳이다. 그러기에 그 누구도 신랑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으면 안 된다. 우리 모두에게 더 큰 숙제가 남았다.

     

지난 몇 주간 부족한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신 분들께 감사하고, 성도님들의 마음을 힘들게 한 것 같아 죄송하다.

     

홍형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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