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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레몬을 레모네이드로 만들라"

     

저는 아침마다 올리브오일에 레몬즙을 섞어 마시곤 합니다. 처음에는 맛이 참 낯설고 어색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첫 모금을 마셨을 때 '이걸 왜 마시는 걸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꾸준히 마시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그 조화가 참 좋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안 마시는 날이 더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가 되었습니다.

     

레몬 자체만 놓고 보면, 너무 시어서 선뜻 손이 가지 않습니다. 그 자체로는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올리브오일과 만나는 순간,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레몬의 산미가 오일의 느끼함을 잡아주고, 오히려 그 맛을 더욱 풍성하고 깊게 만들어 줍니다. 따로 있을 때는 각각의 단점이 두드러지지만, 함께할 때는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며 전혀 새로운 맛을 만들어 냅니다.

     

우리의 모습도 이와 같은 것 같습니다. 우리 안에는 부족함이라는, 위축감이라는 레몬과 같은 모습이 있습니다. 혼자 있을 때는 부족해 보이고, 어딘가 어색 하고 매력 없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스스로를 돌아보면 내세울 것보다 감추고 싶은 것이 더 많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나 같은 사람이 과연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 마음 한켠에 자리 잡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습이 주님의 말씀과 만날 때, 우리의 삶은 전혀 다른 향기와 맛을 내게 됩니다. 레몬이 올리브오일을 만날 때 그 진가를 발휘하듯, 우리의 연약함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나아갈 때 전혀 다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우리의 부족함조차도 하나님 안에서 아름답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한 그 자리를 통해 가장 크게 일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족함과 위축감을 느낄수록, 세상 앞이 아니라 더욱 말씀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세상은 우리의 부족함을 약점으로 바라보지만, 말씀은 그 부족함을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는 통로로 바꾸어 줍니다. 말씀은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삶의 자리에서 조화롭게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에게는 이 여정을 혼자 걷지 않아도 되는 믿음의 공동체가 있습니다. 각자의 레몬을 들고 모인 사람들이 함께 말씀 앞에 나아갈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서로의 부족함이 서로를 채워주고, 서로의 연약함이 서로를 붙들어 줍니다. 혼자였다면 그저 시기만 했을 레몬들이, 함께 모여 풍성한 레모네이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예배드리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말씀을 나누는 이 공동체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릅니다. 각자의 삶의 무게를 혼자 짊어지지 않아도 되고,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눌 수 있는 이 자리가 있다는 것,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오늘 오후에는 교육국 주관으로 다음세대 예배당 건축을 위한 바자회가 체육관에서 열립니다. 이번 바자회는 단순한 행사가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교회 비전을 함께 세워가는 기쁨의 시간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레몬이 모여, 교회에 주신 비전의 레모네이드를 흘려보내는 아름다운 통로가 될 것입니다. 그 비전을 함께 품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설레는 일인지 모릅니다.

     

함께이기에 더 감사하고, 같은 비전을 품었기에 더 아름다운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권율 목사 올림.

 
 
 

나이가 들수록 삶은 점점 단순해지는 것 같습니다. 20대, 30대에는 교회 친구들, 학교 친구들, 동네 친구들, 동아리 친구들, 군대 동기들... 그 많은 관계들을 위해 시간과 노력, 없는 돈까지 기꺼이 쪼개가며 애를 썼습니다. 누군가의 생일을 챙기고, 늦은 밤까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고민을 들어주던 그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돌아보면, 그 많던 사람들이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조차 모를 만큼 관계가 줄어들고, 삶이 조용해져 있습니다. 북적이던 일상이 언제부터인가 고요해지고, 함께하던 자리들이 하나둘 비어갑니다. 이것이 세월이 흐르는 방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신앙의 여정도 다르지 않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는 '홀로'라는 고독과 마주하게 됩니다. 함께 예배드리던 사람들이 떠나기도 하고, 믿음의 동역자 들과의 거리가 멀어지기도 합니다. 그 고독이 때로는 쓸쓸하고 무겁게 느껴 지기도 합니다. 아무도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느낌, 이 길을 혼자 걷고 있다는 느낌이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혼자만의 시간은 결코 비어 있는 시간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고요한 시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특별한 선물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소리가 잦아들고 세상의 소음이 멀어질 때, 비로소 하나님의 음성이 더 선명하게 들려오기 때문입니다. 혼자만의 시간은 믿음으로 하나님과 깊이 동행하는 시간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에 기간 동안 누구보다 바쁜 삶을 사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병자를 고치고, 무리를 가르치셨습니다. 그 사역의 강도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분주함 속에서도 반드시 홀로 있는 시간을 만드셨습니다. 사람들의 환호가 가득한 자리를 뒤로하고, 빈들로, 산으로 나가 하나님 아버지와 단둘이 교제하셨습니다.

     

그것은 어쩔 수 없이 홀로 남겨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의도적으로 선택하신 시간이었습니다. 홀로 되어 하나님과 함께하겠다는 결단, 그 고요한 시간이 예수님 사역의 뿌리였고, 능력의 원천이었습니다.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만큼이나, 하나님과 홀로 있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셨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홀로 있는 시간이 주어집니다. 아무도 없는 이른 아침, 긴 하루를 마치고 혼자 앉아 있는 저녁, 문득 고독이 밀려오는 순간들... 그 시간들을 어떻게 채우고 있습니까? 그 시간에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원하고 있습니까? 그분의 임재를 실제로 경험하고 있습니까?

     

홀로 있는 그 자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가 될 때, 고독은 더 이상 쓸쓸함이 아니라 은혜의 시간으로 바뀝니다. 홀로 걷는 그 길에서, 하나님을 기억하는 은혜가 있을 때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님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룬 믿음의 지체들이 함께 하는 놀라운 경험할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권율 목사 올림.

 
 
 

"두려움의 반대말은 무엇인가…"

     

믿음의 여정 가운데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두려움이 찾아오는 순간이 있습니다. 신앙의 연륜이 깊어도, 말씀을 오래 붙들어 왔어도, 두려움은 어김없이 찾아옵니다. 두려움은 신앙의 수준을 가리지 않습니다. 믿음이 좋다고 알려진 사람도, 오랫동안 교회를 섬겨온 사람도, 어느 날 문득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두려움 앞에 흔들립니다. 그것이 인간의 연약함이고, 우리 모두의 솔직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두려움이 더욱 위험한 이유는, 그것이 그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두려움은 처음에는 작은 불씨처럼 찾아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현재 내가 마주한 상황에 대한 깊은 염려로 번져갑니다. 그리고 그 염려는 결국 하나님을 향한 불순종으로 우리를 이끌어 갑니다. 두려움이 단순한 감정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두려움은 우리의 믿음을 서서히 잠식하고, 하나님보다 눈앞의 문제를 더 크고 무겁게 바라보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두려움의 반대말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용기'라고 답할 것입니다. 두려워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용기는 소중한 덕목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두려움의 진정한 반대말은 용기가 아니라 믿음이라고 합니다.

     

용기와 믿음은 비슷해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용기는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힘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두려움 자체를 전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눈앞의 문제가 아니라 그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봅니다. 그분이 나를 얼마나 깊이 사랑하시는지, 얼마나 세밀하게 붙들고 계시는지를 압니다. 그 앎이 두려움을 밀어냅니다.

     

두려움은 하나님을 작게 볼 때 자라나고, 믿음은 하나님을 크게 볼 때 자라납니다. 결국 두려움과 믿음은 같은 자리를 두고 싸우는 것입니다. 내 마음의 중심에 무엇이 더 크게 자리 잡고 있는가... 그것이 내가 두려움 속에 머무느냐, 믿음으로 나아 가느냐를 결정합니다.

     

다윗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사방이 원수로 둘러싸인 절박한 상황 속에서 시편 27편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시편 27:3)

     

이것은 상황이 좋아서 나온 고백이 아닙니다. 두려움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다윗도 분명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두려움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그 앎이 그를 붙들었고, 절규 대신 찬양을 선택하게 했으며, 두려움 대신 믿음을 붙들게 했습 니다. 상황은 바뀌지 않았지만, 그의 시선이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선의 변화가 그의 고백을 바꾸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두려움이 밀려오는 그 순간, 절규가 아니라 찬양이 흘러나올 수 있습니다. 그것은 감정을 억지로 눌러 참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두려움보다 깊어질 때,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고백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마음 한켠에는 어떤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습니까? 어떤 문제가 하나님보다 더 크게 보이고 있습니까? 그 두려움 앞에서 하나님을 더 크게 바라 보시기를 바랍니다. 시선을 문제에서 하나님께로 옮기는 그 순간, 우리도 다윗처럼 고백할 수 있습니다.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이권율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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