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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일기 5월 22일

     

우리 교회 놀이터가 좋다. 교육관과 연결된 공터에 몇 그루의 큰 나무들이 있다. 그곳에 담장과 deck을 만들고 인조잔디를 깔고 놀이기구를 설치하고 보니 나무그늘 아래 근사한 놀이터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번에 갑자기 불어닥친 돌풍에 한 나무가 두쪽으로 쪼개지며 쓰러졌다.

10여 그루의 나무 중 제일 크고 가지가 풍성하여 놀이터 1/3이상에 그늘을 만들던 나무이다. 그래서 이 나무를 중심으로 원형벤치를 만든 후 그 곳에 앉아 더위를 식히던 멋진 나무였는데 돌풍에 쓰러졌다. 앙상하고 불품없어 그 누구의 시선도 사로잡지 못하던 나무들은 끄덕이 없었는데 무성한 가지로 자태를 뽐내던 이 나무만 소낙비를 동반한 돌풍에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다행히 쓰러지면서 교회 건물을 빗겨서 쓰러졌지만 옆의 다른 나무들의 가지를 부러뜨렸다. 쓰러진 나무를 자세히 보니 큰 두 가지 사이에 병충해로 속 부분이 썩어지고 있음에도 가지와 잎만 키우다 보니 돌풍 앞에 견디지 못하고 쪼개지면서 쓰러진 것이다. 그래서 치우는데만 $2,000이 들었다. 이 큰 덩치의 나무가 쓰러지다 보니 다른 나무들에게 피해를 주고 경제적 손실을 가져온 것이다.

     

요즘 기독교계의 리더들 중에 불미스러운 일로 쓰러지는 소식들이 들린다. 놀이터의 나무처럼 크면 클수록 넘어지는 소리도 크고 주위에 상처들을 준다. 그중에 어느 분이 "자신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줄 알면서도 사역을 열심히 하고 사역을 성장시키면 자신의 잘못이 덮어질 줄 알았다"라고 한다. 그래서 죄 가운데 있으면서도 사역만 성장시켰다고 한다. 가지와 잎만 키운 것이다. 그리고 사역의 성장이라는 가지와 유명해졌다는 잎만 바라보다 보니 속에서 썩고 있는 죄를 보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나의 이야기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누구보다 나는 연약하다. 그래서 나 또한 나의 연약을 감추기 위해 사역을 확장시키고 교회를 성장시키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교계의 이런 이야기들 앞에 아내가 나에게 "무엇 있으면 솔직히 말하라" 고 한다. 웃자고 한 소리이지만 어쩌면 이것이 주님의 음성인 것 같다.

     

다음 주말부터 비젼집회가 시작된다. 20년 전에는 삶이 힘들어서 부르짖었다면 이번에는 나를 지켜내기 위해서 부르짖어야겠다. 이 땅에서는 주어진 자리에 서고 그날에는 주님 앞에 서기 위하여 부르짖어야겠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엡 6:12-13)

     

홍형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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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어버이날을 맞아 한국에 계시는 부모님에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아내와 아들과 같이 부모님에게 인사를 드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아버지의 깊이 파인 주름과 이제는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카락이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많이 수척해지신 아버지… 그런 아버지와의 추억을 기억하고 있는데, 문득 이런 글이 생각이 났습니다.

열 살이 되기 전 아이들에게 아버지는 무엇이든 못 하는 게 없는 슈퍼맨이 된다." 그러나 10대가 되면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이내 알게 된다. 아버지는 모르는 것도 많고 못 하는 것도 많은 대수롭지 않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20대에게 아버지는 아무것도 모르는 존재가 된다. 아버지가 하는 것은 무엇이든 맞는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30대가 되어 아이를 낳아 기르다 보면, 아버지 말씀 중엔 가끔 맞는 말도 있더라는 평가를 내리게 된다. 40대가 되면, 아버지 말씀 중에는 귀담아들을 만한 이야기가 많다고 여기게 된다. 50대는 이럴 때 아버지라면 어떤 결정을 내리실까 생각하게 된다. 이윽고 60대가 되면, "아버지 말씀이 다 맞습니다"라고 고백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때 그의 부모는 더 이상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좀 철이 들어서 그런지, 이제야 아버지 말씀 중에는 귀담아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이럴 때 아버지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전히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아버지에게 걱정과 근심을 끼쳐드리는 아들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를 끝까지 품어 주시고 믿어 주시는 아버지에게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사랑은 바라보는 것이고 다가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내 곁에 있는 사람을 믿어줄 수 있게 합니다. 사랑의 본체이신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당신의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 가운데 보내주셨습니다. 바라보셨고 다가오셨습니다. 왜 그런가요? 바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사랑 때문에, 우리를 믿어주시는 것이고, 그 사랑 때문에 이 세상 가운데 넘어지고 쓰러졌다고 하더라도 그분께 나아가면 그분은 나를 안아 주시고 다시 한번 세워 주시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건 하나님의 따스한 사랑과 은혜입니다. 그 사랑과 은혜로 오늘 하루도 일어서는 우리 순복음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권율 목사

영성일기 5월 3일

     

중국에 가기 전에 한국에 머무르고 있다. 고향 집에도 가보고, 엄마와 옛날 이야기하며 시간도 보내고, 비록 자동차로 지나지만 어릴 적 학교 다니던 추억의 길도 아내와 지나 보았다. 게다가 먹어보고 싶었던 조개구이를 멀리 파도가 부서지는 바닷가에서 먹고, 유명 연예인이 고향의 발전을 위해 세웠다는 장터에서 곱창구이도 먹었다. 그동안 바쁘게 살던 일상에서 튕겨 나와 즐겨보는 호사이다. 그런데 마음이 편치 않다. 실컷 자보고 싶은데 매번 설익은 잠이다. 어릴 적 뛰놀다가 풀밭에 누워 흘러가는 뭉게구름을 바라보며 땀을 식히던 작은 동산에 오르면 숨통이 터지며 행복할 줄 알았는데.... 열심히 살아온 자에게 주어진 휴가가 행복할 줄 알았는데… 손끝에 잡힐 줄 알았던 행복이 안 잡힌다. 손끝에 다다르지 않는 행복 앞에서 오히려 반문이 생긴다.

나는 이런 행복을 누리지 말고 앞만 보며 달려야 하는 인생인가? 나에게 이런 행복은 호사인가?

하나님은 나에게 분명히 행복자(신33:29)라고 말씀하시고, 항상 기뻐하라(살전5:16)면서 나는 행복자라고 정의해 주셨는데 나는 왜 행복하지 않아야 하는가? 나는 근심과 걱정도 없이 이렇게 편하게 지내어도 행복할 수 없는 존재인가? 라는 반문이 든다.

그런데 내가 간과한 것이 있다. 요즘 생명의 삶에 나오는 솔로몬처럼 행복의 근원인 하나님을 잊고 보이는 행복만 추구하고 있다. 나를 하나님으로 채우지 않고,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으면서 환경에서 행복만 추구하고 있다. 내가 목사이니 자연히 행복이 따라올 줄 착각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내 영이 답답해하는 것이다.

     

며칠 후면 중국에 간다. 팀원들끼리 그곳에서 인터넷과 카톡은 물론 전화기도 없이 세상과 단절한 상태로 살아보기로 했다. 오직 주님만 묵상하면서 주님의 시선으로 그 땅을 바라보기로 했다. 이런 중국여행을 앞두고 나에게 주님은 행복의 실체를 보여주신다. 행복은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나를 행복하게 만드신 하나님과 연합됨에서 오는 것을 알게 하신다.

그래서 행복의 근원인 하나님을 찾고자 말씀과 기도로 나를 채워본다. 중국여행이 기다려진다.

     

홍형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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