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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복음 교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우주 (은하)라는 공간은 팽창하면서 태양으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은 부모와 자녀들 관계 사이에서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을 해서 자녀를 낳습니다. 그 자녀가 점점 자라게 돼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부모와 더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부모로부터 점점 더 멀어진다는 거예요. 그래서 부모와 자녀와의 간극을 이어주는 것이 ‘추억’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알고부터는 저는 바쁜 중에도 시간을 내어 아들과 좋은 기억을 만들어 가려고 하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루는 아들이 태권도장에서 벨트 테스트가 있다고 해서 가보았습니다. 태권도 품새를 하고 이제 비슷한 또래와 대련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배웠던 발차기를 선보이지만 의욕만 앞서는 아이의 모습과 상대방의 발차기에 맞는 모습을 보면서 아비로써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이런 마음이 들 때 즈음에 제가 어렸을 적 어머님께서 저에게 늘상 하시던 말씀이 기억이 났습니다. ‘돈 (일명: 깽값)은 물어줄 테니, 어디 가서 뺏기지 말고 맞고 다니지 마” 저는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어렸을 적 흘리기도 잘 흘리고, 친구들에게도 가끔 맞고 다녔던 것 같습니다.


한 미식축구 감독이 새로운 선수를 구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스카우터가 감독에게 물었다. “어떤 선수를 원하세요” 태클을 당해 넘어져도 금방 일어나 뛸 수 있는 순발력이 강한 선수인가요?” 감독은 아니라고 했다. “그럼 넘어져도 일어나고 또 넘어져도 일어나는 끈질긴 선수인가요?” 감독은 또 아니라고 했다. “제가 원하는 선수는 상대방 때문에 넘어졌다가 일어나는 선수가 아니라, 상대방을 넘어뜨리는 선수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꼭 넘어져야 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의 조건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도움과 인도하심을 구하되 모든 것이 자신에게 달린 듯 행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막 9:23)

모든 사람이 다 무너질 것 같은 상황에서도 그러지 않는 믿음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문제를 바라보며 낙망하고 넘어질 것을 미리 염려하는 자들이 아니라, 천국의 소망으로 눈을 드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의 손을 붙으십시오. 똑같은 상황에서도 우리는 승리의 삶을 살게 될줄 믿습니다.


이권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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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복음 교회

영성일기. 9월 22일

나이가 먹어 가면서 아버지가 작아 보였다. 매일 술 드시고 엄마와 싸우는 모습도 싫었고 무능력도 싫었다. 그래서 친구들과 길가다 아버지를 만나면 아버지가 부끄러워 외면하려 했다. 그런데 내 나이 50이 넘으면서 내게서 그토록 싫어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보인다. 술 취하듯 드러난 실수는 없어도 내행동과 언어에서 아버지가 발견될 때면 섬칫하듯 놀란다. 아버지와 반대의 길을 가고자 해서 술도 안 먹고 열심히 살고자 했는데... 내 의도와 달리 내가 싫어하던 아버지 모습이 내게서 보인다.


요즘 큐티 말씀을 보면 이삭의 실수가 나온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했던 실수 복사판이다. 그 아버지의 그 아들 아니랄까 봐 똑같이 실수한다. 이삭의 실수에서 나도 아버지처럼 자식들에게 자기 즐거움만 아는 아버지로, 무능력한 아버지로 비쳐질까? 두렵다. 아들이 언젠가 웃자고 한 이야기지만 "아빠 나 고2 때 무슨 고민이 있었는지 알아?"라고 물었을 때, 딸아이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겨주지 않아도 되니 짐만 되지 말라"라고 할 때 이 말이 날카롭게 들렸던 것이 아버지에 대한 나의 상처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이삭이 그 실수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방법은 아버지가 팠던 우물을 다시 파면 서다. 다툼에 분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팠던 우물을 다시파자 샘물이 터지면서 서서히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브엘세바에 다다른다.


사람들이 나를 볼 때면 편안하고 배려가 많다고 한다. 이런 인상이 목회에 큰 도움이 된다. 아버지가 팠던 우물을 다시 팠던 이삭을 묵상하면서 나의 이런 성품이 아버지 영향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버지는 주위에 원수진 사람이 없었다. 항상 다른 사람을 배려하셨다. 그런데 나는 이 모습이 좋은게 좋은 것처럼 보여 싫었다. 무능력처럼 보여 싫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이 귀한 성품에 대해 관심 없이 아버지와 반대되는 삶으로만 살고자 했다. 그래서 경쟁에서 이기려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그토록 싫어하던 아버지의 성품이 내게 유전되어 목양에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을 이삭이 아버지가 팠던 우물을 다시 파는 모습에서 알게 되었다. 당연한 줄 알았던 성품이 아버지가 내게 주신 유산인 것이다. 하나님은 아버지를 통해 영적 유산을 주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오늘 나로 힘을 더해 주고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몇 개월 전 살아생전 뵌다며 어느 가을날에 한국을 방문했다. 3년간 암과 싸우느라 뼈만 남은 아버지께서 동터오자 검은장화를 신고 바가지 하나를 가지고 어디론가 가셨다. 그리고는 얼마 뒤 알밤 가득한 바가지를 엄마에게 내밀며 "형선이가 밤 좋아하니 밤 넣고 밥해 주라 신다" 오늘은 유난히도 삭정이 같은 다리로 그 무거운 장화를 신고 걸으시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생각난다. 그래서 엄마에게 전화해 "고맙다"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엄마는 "내가 고맙지.. 전화해 주어 고맙다"하신다.


주님. 내게 좋은 부모님을 주신 것과 제가 부모인 것이 감사합니다.

홍형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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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일기. 9월 12일

새벽기도를 마치고 염소밥을 준후에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전화가 울린다. 윤재경 집사님이다. 장모님이 소천하셨다고 한다. 지난밤 12시 10분경에 편안히 하나님 품에 안기셨다고 한다. 임종이 가까워온 것을 알면서도 함장 모임 준비로 못가 뵈었기에 오늘 가보려 했는데 기다리지 못하시고 지난밤에 가신 것이다. 미안하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에 왜 연락 안 했느냐 했더니 늦은밤이라 연락 못했다고 하신다. 연로하셔서 예배의 자리도 못 지키시는 분들이 보이고, 김송자 권사님처럼 한분 한분이 떠나실 때면 "이러다 내 차례도 오겠지?"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나이가 먹나 보다.

오래전부터 방치되어 있는 화분들을 보면서 정리를 해야지 하면서도 건드리지 못하던 화분들을 오늘 정리했다. 화분 정리를 한다는 소리를 듣고 왔다면서 편정복 집사님이 오시더니 곧이어 다른 일로 권월례 집사님이 오셨다. 이렇게 세 사람이 화분정리를 시작했다. 그런데 우리 세 사람의 공통점은 허리 디스크가 있다. 허리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다. 거기에다 두 분은 나이가 많다.

지오바니의 도움으로 교회 내 모든 화분을 한 곳에 모은 후 분갈이를 시작했다. 70, 80년의 인생을 사신 분들이라 아시는 것이 많다. 그런데 문제는 힘이 없다. 말뿐?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실제적인 도움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이분들이 계셔서 분갈이뿐만 아니라 옆집에서 넘어온 담쟁이넝쿨까지 정리했다. 그러면서 언젠가 읽었기에 책 제목도 모르지만 그 책의 한 대목이 생각난다. 짐이 가득하여 무거운 리어카를 끌고 가는 아들의 모습에 연로한 어머니가 도와주려 밀어주니 아들이 이렇게 말한다. "어머니는 손만 얹어주세요."

지난 20년간 한 교회를 섬기며 달려왔다. 내가 생각해도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내가 묵묵히 이 길을 걷도록 힘이되어 주시고 손을 얹어주신 분들이 있다는 것이다. 바울이 로마서를 마치면서 이름을 나열하면서 그토록 고마워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처럼. 오늘은 루포의 어머니는 내 어머니라고 고백한 것처럼, 내게 힘이 되어주신 얼굴들이 생각난다. 어떤 분은 10년 20년을 한결같이 곁에 있으면서 이제는 손도 못 얹을 정도로 연로하신 분들도 있다. 그리고 언젠가 내 곁을 떠나시겠지...

아브라함 선교회 가을여행을 계획하면서 "오늘이 인생에서 제일 젊은 날"이라고 꼬시고 있다. 이 말은 오늘이 기회라는 것이다. 오늘이라는 기회 속에서 내 인생의 동역자들을 사랑해야겠다.


주님 감사합니다.

홍형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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