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26 목양칼럼 (Words From the Pastor)
- 순복음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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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딸아이가 엄마와 속닥이더니 이집트 카이로에 세워진 난민학교를 섬기기 위해 간다고 한다. 예전에 딸아이가 1년간 학생 선교사로 헌신한 적도 있고, 나 또한 인생 가운데 1년 정도는 선교지에서 봉사하는 것도 괜찮다 여겼기에 반대 없이 보내었다. 그런데 1년일 줄 알았는데 2년이 가고 3년이 가도 계속 이집트에 머무르더니 급기야 이집트에서 살겠다고 한다. 휴스턴에 오면 왠지 낯선 것이 이집트가 편하다면서 이집트에서 수단 난민 아이들과 살겠다고 한다. 그 순간 내 마음이 덜컥 내려앉으며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무엇이 행복이고 무엇이 인생인가를 생각하니 답이 쉬웠다. 하나님 안에서 소명을 따라 살고, 이것이 가치 있다 여긴다면 이것이 행복이고 성공한 삶이 아닐까? 그런데 딸이 가치 있고 행복하다는데 나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딸아이의 선택을 응원하기로 했다.
2026년 비전집회가 시작되었다. 계속된 비전집회 속에서 처음에는 비전은 “내 눈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 것이 비전이라”는 것을 알려 주시더니, 요한 계시록 7장 말씀처럼 ”10일간 모든 민족, 모든 세대, 모든 언어가 모이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는 사실을 알려주셨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내게 계속 순종을 말씀하신다. 그때마다 “딸아이를 축복하며 카이로에 보냈잖아요”라고 대답했다. 마치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렸듯이 나도 순종했다면서, 이민자로서 내 못다한 꿈을 이루어주리라고 여기던 딸이, 카이로에 있겠다고 할 때 쓰린 마음으로 응원했기에 모든 것을 순종 했다고 여겼다. 그런데 주님은 계속 내게 순종을 이야기하신다.
그래서 “무슨 순종일까”를 되묻는데 문득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순종”이라고 하시는 것 같다. 사실 나는 2년 전에 휴스턴을 떠나려고 하다가 떠나지 못한 후 이 자리에 있는 것이 불편했다. 내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이 불편하고 내가 감당할 수 없다고 여기기에 두려웠다. 그래서 몸은 이곳에 있어도 늘 내 자리가 아니라 여겼다. 그런데 이런 내 마음을 간파하시고 하나님은 순종을 요구하신다. 몸과 마음이 이 자리에 있는 순종을 요구하신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두 손이 올라갔다. 그리고 “주여! 주여! 주여”라고 외쳤다. 힘들어서 외쳤다. 그러다가 나를 이곳에 두시려면 감당할 능력을 달라고 부르짖었다.
하나님은 나에게 왜 이리도 순종을 요구하실까? 이 순종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라는 질문 속에 순종의 끝을 내가 알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순종의 끝을 아시는 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 하나님께서 나를 이 자리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신다면 나는 이 자리에 있으면 된다.
비전집회가 마쳐지고 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여기에 서있고 살아가고 싶다.
홍형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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