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9.26 영성일기 (Words From the Pastor)
- 순복음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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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되면서 교회 농장에 생명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어미 염소 세 마리가 각각 두 마리씩 새끼를 낳아 여섯 마리의 새끼 염소가 교회 주변을 뛰어다닌다. 금계와 은계들도 알을 낳기 시작했고, 부화기에 넣고 기다린 끝에 은계 여덟 마리가 태어났다. 육추기에서 두 주를 보내고 세상 밖으로 나온 작은 생명들은 참으로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마음 깊은 곳에서 풍요로움과 감사가 올라왔다.
그러나 이 기쁨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어느 날 아침, 축사팀이 소란스러웠다. 은계 우리가 열려 있었고, 여덟 마리가 모두 사라졌다. 사람의 손을 탄 듯했다. 마음이 무너졌다. 생명이 주는 기쁨이 한순간에 분노와 허탈함으로 바뀌었다. 게다가 자라나는 새끼 염소들은 울타리 밖으로 나와 꽃나무와 화초들을 뜯어 먹기 시작했다. 나뭇잎이 있어야 열매를 맺고 성장할 텐데, 나무들은 점점 가지뿐인 모습이 되어 갔다. 풍성함이라 생각했던 것이 어느새 상처가 되는 현실로 다가왔다. 이처럼 축복이라 여겼던 것들이 오늘 나를 괴롭게 하는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오늘 수요예배에서 ‘생명수 여성’ 모임을 통해 한나의 이야기를 다시 들었다. 한나는 남편의 사랑을 받았지만 자녀가 없었고, 브닌나는 남편의 사랑은 덜 받았지만 많은 자녀를 가졌다. 그런데 브닌나가 한나를 괴롭혔다. 두 사람의 이름이 주는 뜻이 마음에 깊이 남았다.
한나 — 은혜 브닌나 — 보석
보석은 태어날 때부터 갖추어진 것으로 화려하고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그러나 은혜는 다르다. 매일 공급받아야만 존재할 수 있다. 하루라도 공급이 끊기면 살아갈 수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녀가 많은 브닌나가 오히려 한나를 질투했다. 이미 가진 것이 많아 보석 같은 사람이, 하나님만 붙들고 사는 사람을 시기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왜일까?
한나는 이 일이 괴로워서 하나님께 기도했고, 기도 중에 “아들을 주시면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겠습니다”라고 고백한다. 나실인으로 드리겠다는 서원이었다. 그 순간 하나님의 뜻과 한나의 기도가 맞닿은 것이다. 한나가 기도할 때는 사사시대 말엽으로 타락의 정점이었다. 그때 한나는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삭도를 대지 않는 아들로 키우겠습니다”라고 결단한다. 이것이 은혜이다. 순간순간은 막힌 것 같지만,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거기에 내 삶을 맞추는 것, 이것이 은혜이다.
문득 나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나의 삶은 한나인가, 브닌나인가?
내 삶에는 처음부터 보석 같은 것이 없는 것 같다. 축복인 줄 알았는데, 보석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오히려 나를 격동케 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것 때문에 주님께 엎드리니 은혜가 임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그림이 그려진다. 염소 우리 주위로 아이들이 가득하다. 칼스 아이들은 학교에 오고 갈 때마다 들른다. 속 썩이는 아기 염소들이 아이들에게 학교에 오고, 교회에 오는 것에 기대감을 주는가 보다. 속 썩이던 동물들이 은혜의 통로가 되는 순간이다. 이런 모습을 바라보는 나에게 주님이 “너는 무엇으로 사느냐?”라고 물으시는 것 같다. 그 물음 앞에 오늘 나는 “한나처럼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입니다”라고 고백해 본다. 그 순간 은혜가 부어지며 오히려 더 큰 감사가 임한다. 잃어버린 은계들보다, 상한 나무들보다, 내 마음을 다시 하나님께 향하게 하신 것이 더 큰 은혜이기 때문이다.
홍형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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