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1.26 목양칼럼 (Words From the Pastor)
감사는 더 아름다운 것을 얻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게 주신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 같다. 다른 사람의 삶이 더 아름다워 보이고, 다른 사람의 사역이 더 커 보이고, 다른 사람에게 주신 은혜가 더 풍성해 보일 때가 있다. 그러나 그것을 바라보느라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놓친다면, 나는 보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보물이 없는 사람처럼 살아가는 것일 것이다.
알래스카에 왔다. 은혜와 평강 순복음교회 주일 예배 인도와 교단 목회자 세미나 준비차 비행기 두 번 갈아타고 15시간 만에 알래스카에 왔다. 이곳은 벌써 겨울의 문턱에서 앵커리지를 둘러싼 산봉우리들은 하얀 눈으로 덮여 있고, 산 아래에는 노랗게 물든 자작나무들로 장관을 이룬다. 비 오다가 구름이 물러간 뒤 속살을 드러낸 파란 하늘도 예쁘고 볼을 지나 가슴까지 시원케 하는 차가운 바람은 휴스턴 더위에 지친 나를 들뜨게 하는 것이 너무 좋다. 아내는 골목을 돌고 언덕을 달릴 때마다 “와우”하고 탄성을 지른다. 이런 아내를 보며 하마터면 “목회하는 남편 만나 힘들다고 하더니 남편 잘 만나 알래스카까지 왔네”라고 말할 뻔했다. 이처럼 늦가을을 지나 겨울의 문턱에 들어선 알래스카는 아름답다. 무더운 휴스턴에 살아서인지 이 아름다움 들은 부러움을 넘어 나를 초라하게 한다. 알래스카는 귀하고 휴스턴은 초라해 보이게 한다.
이런 초라함에 빠진 나에게 주님은 문득 이곳에 없는 것들이 보게 하셨다. 휴스턴에는 있는데 이곳에는 없는 것들이 보인다. 아름드리 야자수 나무도 안 보이고 넓은 잔디밭도 안 보이고 화단마다 가득한 꽃도 안 보인다. 거꾸로 말하면 도시마다 각자의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곳에 아름다움이라는 보물들을 주셨지만 익숙함이라는 나의 죄성이 하나님께서 내게 줄로 재어준 아름다움(시 16:6)를 보지도 못하게 하고 감사 치도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휴스턴에는 지난해 약 12만 7천 명의 인구가 늘었다고 한다. 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아오는 도시에서 살면서도 나는 정작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삶의 귀함을 잊고, 다른 곳의 아름다움만 부러워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나는 풍경만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인생과 사역도 비교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삶보다 다른 사람에게 주신 삶이 더 귀하고 아름다워 보일 때가 있다.
누군가가 “예수님의 보혈은 모두에게 동일하다”라고 했다. 예수님이 그 위대한 사도바울을 구원하기 위해 흘리신 보혈의 양이나, 세계적인 목회자인 조용기 목사님을 위해 흘리신 보혈의 양이나, 나 같은 자를 위해 흘리신 보혈의 양이나 같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도바울의 구원과 나의 구원의 본질이 같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사도바울이나 나나 동일한 아름다움으로 보시고 아름답게 여기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 안의 연약은 타인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내 안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한다. 앵커리지의 경관에 탄성이 있듯 휴스턴의 아름다움에도 탄성이 있고 내 안에도 탄성이 있고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 있느냐가 아니라, 그곳에서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오늘도 익숙함이라는 안경을 벗고 내게 줄로 재어 주신 구역을 바라보고 싶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하고 싶다.
주님! 다른 사람의 아름다움을 부러워하느라 제게 주신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게 하소서. 제게 주신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발견하게 하시고, 그 아름다움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게 하소서.
홍형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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