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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예배를 통해 멋쟁이 갈렙을 만났다. 85세 된 갈렙은 그 누구도 정복하고자 하지 않는 헤브론 땅을 달라고 한다(수 14:10-12). 이 땅은 조상 아브라함이 갈대아우르를 떠나 가나안땅에 들어와서 거주했던 땅이고, 조상 아브라함, 사라, 이삭과 라헬의 무덤이 있는 땅으로 영적가치가 있는 땅이다. 그럼에도 기골이 장대한 아낙자손이 살아서인지 그 누구도 정복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갈렙은 45년 전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 땅을 주신다고 하지 않았느냐며 “언약”을 붙들고는 내게 이 땅을 기업으로 달라고 한다. 그리고는 그 땅을 차지한다. 헤브론의 영적 가치를 아는 갈렙은 85살에 차지한 그 땅을 바라보며 얼마나 감사하고 기뻐했을까?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헤브론에 도피성이 세워질 것이라며 그 땅을 제사장들의 기업으로 내어놓으라고 한다. 그 누구도 엄두 내지 못하던 땅을 생명 다하여 취했더니 이제는 내어 놓으란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런데 성경은 더 이상의 언급 없이 헤브론이 도피성이 되었다고 한다. 이 말은 갈렙이 순종한 것이다. 이 부분을 김문수목사님께서 설교하면서 아브 라함이 이삭을 모리아산에 드린 이야기와 마지막 한 움큼 남은 밀가루와 기름 한 병으로 엘리야를 대접한 사르밧과부 이야기를 하면서, 이 모든 것의 동기가 사랑이라고 한다. 하나님을 사랑해서 갈렙도, 아브라함도, 사르밧 과부도 내어 놓았다고 한다.

     

어느 분과 교제하던 중 설교 이야기가 나왔다. 아쉬움을 토로한다. 직접 내 이야기는 아니지만 요즘 대다수 목회자들의 설교에 한방이 없다고 한다. 1%가 부족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정기적으로 금식하는 어느 목사님을 이야기하면서 나에게 금식하면 어떻겠냐고 한다. 정기적으로 금식하면 어떻겠느냐고 한다. 나에 대한 기대와 사랑 속에서 하신 말이고, 어떤 의도인지는 알지만 마음이 불편하다. 솔직히 내가 듣고 싶은 말은 “목사님 설교에 은혜받고 있어요”“ 어쩜 목회를 이리도 잘하세요”였는데 … 금식하라니… 불편하다. 그러면서 지난 23년간 우리 교회를 여기까지 세우느라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 금식으로 애간장을 녹이며 살아왔는데, 또 금식하라니 속상하다. 나의 과거를 인정해 주지 않는 것 같아 속상하다.

     

그 순간 갈렙이 떠오른다. 85세의 나이에 생명 걸고 차지한 땅이라 그 무엇보다 애착이 더 갔을 것이다. 그곳에 집도 짓고 포도원도 만들고… 얼마나 많은 꿈을 꾸고 있었을까? 그리고 자신이 이룬 업적에 사람들이 역사성을 언급하며 칭찬해 주기를 바랐을까? 그런데 내어놓으라는 말에 말없이 순종한다. 그리고 이것은 주를 향한 사랑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왜 나는 “금식”하라는 말이 섭섭할까? 어느새 나도 60을 바라보고 있다. 이제는 은근히 오라고 손짓하던 교회들도 뜸해진 듯하다. 언제든 선교지가 아니어도 갈 곳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휴스턴 뿐이라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은퇴까지는 잘해야지”하는 욕심이 생긴다. 지난 시간의 헌신에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으며 안주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그런데 내가 듣고 싶지 않은 “금식하라 “는 말을 들은 것이다. 그리고 주님은 갈렙을 통해 내가 불쾌해하는 이유를 보게 하신다. 나도 모르게 속물이 되어 가는 나를 보게 하신다.

     

나 자신을 보고 깨닫게 하신 주님도 감사하고, 용기 내어 금식하라고 말해주신 분도 고맙다.

     

연말이지만 갈렙을 생각하며 미루지 말고 이틀이라도 금식해야겠다. 진짜 주님을 사랑하고 싶다.

     

홍형선 목사

 
 
 

내가 사는 휴스턴에는 이제 가을이다. 12월에 가을 이라니.. 이제야 나무들마다 울긋불긋 단풍이 지며 한 해 동안 열매 맺느라 힘들었던 나무들은 무거운 짐을 벗듯 한잎 두잎 떨구어 뜨리고 있다. 떨어진 나뭇잎들은 바람에 이리저리 구르다가 어디론가 사라져 간다.

     

교제 중 어느 분이 나무에게서 목회자의 자세를 배운다고 한다. 나무는 그늘을 만든다. 온 에너지를 모아서 푸르른 그늘을 만들면 그 그늘에 온갖 새들이 날아와 쉼을 얻고 둥지를 틀고 보금자리를 만든다. 이처럼 새들이 날아오는 것은 나무가 좋아서가 아니라 그들의 필요 때문이다. 그러다가 나무의 열매가 익어가면 그 열매를 먹기 위해 온갖 새들과 동물들이 모여든다. 이 또한 먹을 것이 있어서이다. 이럴 때면 나무 주위에는 새들의 지저귐과 나무를 오르내리는 다람쥐들의 행복함이 가득하다. 그러다가 찬 바람이 불면 나뭇잎들이 떨어지며 그늘도 사라지고 열매도 없으면 여름내 나무 주위를 맴돌던 친구들이 사라진다. 철저히 홀로 남겨진다. 거기다 나무들이 잎파리를 떨어뜨리면 어떤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도 모른다. 나는 참나무야, 감나무야 하고 외치지만 그 누구도 몰라준다. 철저히 홀로 있는 시간이고 자기 부인의 시간이다. 그러나 나무의 아름다움은 홀로 있는 시간에 있다. 이 시간을 원망하거나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준비하는 시간이다. 뿌리를 뻗고 영양분을 비축하여 다가올 여름과 가을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그러기에 자기를 떠난 새들에게도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도 몰라주는 다른 나무들에게 신경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다가올 여름을 위해 준비한다. 이것이 나무의 정체성이다.

     

앙상해져사는 나무를 묵상하며 목회자인 나를 본다. 나무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분명하지만 목양에는 사계절이 없다. 아니 사계절이 동시에 온다. 푸러름과 열매가 있는가 하면 겨울이다. 주위에 사람들로 둘러싸이고 칭찬이 있음과 동시에 철저한 혼자, 외로움이 함께 온다. 이때가 목회자의 정체성을 정립할 때이다. 목회자의 정체성은 얼마나 많은 새가 내 주위에 날아왔는가에 있지 않고, 얼마나 많은 열매가 맺혀 있는가에 있지 않다. 홀로 있는 시간에 얼마나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는가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겨울을 어떻게 통과하고 있는가에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예수님도 몰려드는 군중 속에 있다가도 군중을 떠나 홀로 남으셨나 보다. 그리고는 홀로 있는 밤을 낭비하지 않으셨다. 아버지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 밤을, 그 겨울을 통과하셨고 결국에는 십자가를 지나 부활이라는 계절을 여셨나 보다.

     

주님! 목회의 사계절을 하나님과 함께 통과하게 하소서…

     

홍형선 목사

 
 
 

새벽예배에 영유아부를 맡고 있는 서승희 전도사님이 말씀 중에 “실수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굳어짐이 문제”라고 한다. 무엇인가가 내 마음을 친다. 그러면서 출애굽기의 바로 이야기를 하신다.

     

출애굽기에 보면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강팍케 했다”는 말씀이 10번 나온다. 그러면서 바로 스스로가 마음을 강팍케 했다는 표현도 10번 나온다. 히브리어로 보면 “카자크”와 “키베드”이다. 모두가 “단단하게 하다”“굳어지게 하다 “라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바로의 마음이 강팍함으로 굳어져 가니까 하나님이 내버려 두셨다는 뜻이다. 로마서에도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버려 두사”(롬 1:26)라고 똑같이 표현하고 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강력한 심판 중의 하나가 내어버려 두심이다. 만약 내 마음대로 살도록 하나님이 내어버려 두신다면 어떨까? 끔찍 하다. 나는 내 자신을 알기에 이렇게 굳어질까봐 두려움이 든다. 그러기에 나에게 실수가 문제가 아니라 죄성대로 굳어지도록 내어버려 둠이 문제이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교제에도 그날이 그날처럼, 사모함이 없는 것이 문제이다.

     

지난 주일예배 후 어느 분이 이런 카톡을 보내왔다. 이분은 평생을 과학자로 살아오신 지성인이며 남성이다. “목사님! 저는 요즈음 예배 때마다 성령님의 운행하심을 강렬하게 느낍니다. 특히 추수감사예배 때에는 완전히 사로잡혀 있었구요, 어제 주일에는 목사님 설교 중에 예수님이 오셔서 제 이마에 입맞추고 꼭 안아주시는 환상을 느꼈습니다. 제가 열살 때 주님을 만났으니까 63년 만에 처음 느낀 체험입니다. 지금도 예수님의 그 인자하신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저의 신앙과 믿음을 견고하게 해 주시는 목사님과 교회에 늘 감사합니다”

     

이 카톡을 받고 내 안에 부러움과 동시에 굳어진 신앙에 대한 회개가 올라왔다. 사실 나는 큰 지식도 없으며 이성적이다. 그래서 이성적으로 이해가 되어야만 동의 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체험의 영역에 대하여 인정하면서도 나 자신은 추구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신앙생활 가운데 성령체험은 물론 쓰러짐, 향기, 경련 등 초월적인 체험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이성을 발동하여 억누르곤 했다. 하나님의 역사 앞에 내가 굳어진 마음으로 억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 하나님의 역사가 제한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회개가 나온다.

     

요즘 주일 예배에 아가서를 나누고 있다. 아가서에는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안 나온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하다. 그 사랑 때문에 술람미여인이 의심에서 일어나 신랑과의 깊은 사랑 속에 들어갔듯이 아가서를 나누는 동안 나 또한 하나님의 사랑이 뼛속까지 체험되었으면 좋겠다.

     

주님! 내게도 입 맞추어 주세요. 당신의 사랑은 이 세상에서 들뜨게 하는 어떤 포도주보다 낫습니다.

     

홍형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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