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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하루는 늘 새벽예배로 시작된다. 그러나 새벽예배를 향해 가는 길은 언제나 여유롭지 못하다. 출근 준비를 마치고 새벽예배에 가려면 늘 쫓긴다. 전날 밤에 “내일은 10분만 더 일찍 일어나자” 다짐하지만, 몸은 어김없이 같은 시간에 깨어난다. 그래서 교회로 가는 길의 신호등이 내 마음을 좌우한다. 어떤 신호등이 빨간 불이냐에 따라 예배당 도착 시간이 3–4분씩 달라진다. 오늘도 마음이 급해 부리나케 달리는데, 앞차들이 두 레인에서 나란히 천천히 움직인다. “이러다 저 신호에 걸리겠는데…“ 그리고 염려가 현실이 되어 내 눈앞에서 신호는 빨간 불로 바뀌었다. 그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오래전에 쓰던 언어들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 했다. 화가 나서 신호를 저따위로 만들었냐면서 애매한 공무원들을 욕했다. 분을 삭이며 멍하니 빨간 신호등을 바라보다가 “나는 왜 이렇게까지 급할까?”라고 생각했다.

     

곰곰이 돌아보니, 나는 시골에서 자라다 보니 부지런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삶을 배웠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보다 빨라야 했고, 성공하려면 속도와 경쟁이 미덕이었다. 그렇게 달려온 삶의 방식이 어느새 ‘나’라는 사람을 만들었다. 문제는 그 급함이 사역의 자리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나는 기다리기보다 결정하려 하고, 과정보다 결과를 서두른다. 그러기에 일이 빨리 해결되면 성취감에 만족해하며, 사람들이 “추진력 있는 목사님”이라고 칭찬하면 마치 내 능력을 인정받은 듯 기뻐했다. 그러나 일이 더뎌질 때면 환경을 탓하고, 사람을 평가했다. 때로는 함께 사역하는 이들에게 조급함에서 나온 감정을 쏟아내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빠르든 늦든 결국 이루어질 일들은 다 이루어 졌다. 그럼에도 나는 늘 “속도”를 붙잡고 “나의 패턴”을 고집해 왔다.

     

이런 나를 향해 아내는 오래전부터 “여유 있는 삶을 살라 “고 말해 왔다. 내가 무언가를 하자고 할 때 아내가 항상 반대했던 이유가, 그 급함 속에서 주님의 손길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아내는 내게 “당신만 좋은 목사가 되려고 하지 말라 “고 잔소리한다. 혼자 앞서 달리지 말고, 다른 사역자들에게도 기회를 주라는 말이다. 급한 마음에 다른 사람의 일을 가로채지 말라는 말이다. 열심히라는 이름으로 혼자만 의롭다고 착각하지 말라는 말이다.

     

그리고 “나이를 먹어가니, 이제는 어른이 돼라.”라고 잔소리한다. 나이는 저절로 먹지만 어른은 저절로 되지 않는다고 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가장 추한 것은 고집이며, 그 고집 속에는 언제나 자기 의가 숨어 있다고 한다. 사실 그렇다. 한 교회에서 20년 넘게 목회하다 보니 후배들에게 해 줄 말이 많아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내 경험이 옳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서 “내가 생각하기에는…” “내 경험에는…”하면서 은근히 내 의를 세워 왔다. 그런데 어른이 되라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마 20:26)고 말씀하셨나 보다.

     

아내의 말처럼 내려놓음이 어른의 모습이라면, 그 내려놓음은 곧 십자가 앞에서 자기 의를 포기하는 일일 것이다. 그때 충동적인 열심이 아니라 참된 기다림의 영성이 나타날 것이다.

     

오늘 하나님은 빨간 신호등 앞에 나를 멈추어 세우고는 나는 네가 빨리 가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기를 원한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홍형선 목사

 
 
 

신규철 형제가 많이 아프다. 40살이라는 젊은 나이인데도 폐에서 시작된 암세포가 척추를 넘어 머리까지 퍼져있다. 그래서 온 교회가 형제의 치유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월요일에 검진을 갔다가 너무 몸이 안 좋아 응급실에 갔다는 소식에 연말이라 분주함이 있어도 한 끼라도 금식하며 기도하자고 함장님들을 통해 금식을 선포했다. 그리고 검사 결과가 나왔다. 신장이 안 좋아 현재로서는 더 이상의 약물치료를 할 수가 없다고 한다. 척추가 암세포의 공격으로 pain이 심하여 모르핀보다 8배 강한 진통제를 4시간 간격으로 투여해야 한다고 한다. 무엇 보다 구토증상으로 음식은 고사하고 물조차도 먹을 수 없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듣는 순간, 학창 시절에 형편없는 성적표를 받아 든 것처럼 부끄럽다. 모든 것이 내 죄와 연약 때문이라는 생각에 부끄럽다. 그러 면서 화가 난다. 5살짜리 유원이가 목놓아 울며 “우리 아빠 고쳐달라” 라고 기도했는데, 그렇게 새벽잠 많다는 젊은 함장님이 새벽기도에 나와 눈물로 기도했는데, 어느 부부는 성전에 나와 철야하며 기도했는데, 그 많은 성도님들이 금식하며 기도했는데… 이게 뭐냐며 화가 난다. 그리고 그런 성도님들을 보기가 죄송하다.

     

이런 마음으로 주님께 엎드렸다. 답답함에 입술은 달싹거리지만 마음은 차갑다. 그래도 할 수 있는 것이 기도밖에 없기에 입술만 달싹거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욥기가 떠 오른다. 내 모습이 영락없는 욥의 친구들(엘리자스, 빌닷, 소발)의 모습이다. 인과응보로 고난을 해석하는 친구들처럼 현재의 결과에 가슴이 차가워진 내 모습이 보인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욥에게 하신 질문이 떠 오른다. “누가 땅의 기초를 놓았는가? 누가 그 치수를 정했는가? 바다의 경계를 정한 이는 누구 인가? 그리고 이 질문에 욥은 이렇게 대답한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만 듣다가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하나님은 욥의 질문 ‘왜?’에 답하지 않으시고, “내가 누구인가?”를 보게 하심으로 욥을 회복시키셨다. 그렇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왜 “가 아니라 더욱 하나님을 알고 신뢰하는 것이다.

     

어느 분에게 규철형제가 병원에서 전화했다고 한다. 의학적으로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며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린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가 교회에서 찬양사역을 하면서 믿음이 있는 줄 알았는데, 이 일로 자기가 얼마나 믿음이 없는지를 알게 되었다면서 약을 의지할 때는 쫓기는 마음이었지만 하나님만 의지하니 도리어 힘이 나고 편안하다고 했다고 한다.

     

규철형제는 지금 인생의 고난 앞에서 욥처럼 질문을 하기보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선하시다 “고 고백해야 한다.

     

하나님! 규철형제에게, 저에게 믿음을 주세요

 
 
 

내가 좋아하는 카페가 있다. EM의 하경자매님이 경영하는 Luce Avenue coffee shop이다. 이곳에 가면 복고풍의 인테리어도 좋고, 항상 밝게 웃어주는 하경 자매의 환한 미소가 좋다. 목사로서 성도들의 사업이 잘되기 원하는 마음 때문인지 항상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오더 하는 것도 좋고, 기다리다 받아 든 커피의 은은한 향이 정말 좋다.

     

오늘도 심방 중에 카페 앞을 지나다가 들렀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지만 카페의 분위기도 그립고 하경자매에게 떡도 주고 싶어 들렀다. 늘 그랬듯이 오늘도 환하게 웃어주며 “어떻게 오셨어요?”한다. 그래서 “카페에 커피 마시러 오지요” 했더니 무슨 커피를 드릴까요 한다. 달달하면서 커피내음 가득한 아이스커피를 부탁한다고 했더니 코코넛 아이스커피로 만들어 주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공짜라고 하기에 떡을 주었더니 기뻐하면서 물물교환이라고 한다.

     

이상하다. 성격 급한 내가 이곳에서 커피를 오더하고 기다리는 기다림은 지루 하지가 않다. 커피머신에서 들려오는 소리와 스팀소리도 재미있고, 분주히 움직이는 손길을 보고, 다른 사람들의 주문을 듣고 있으려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이 기다림조차 하나의 환대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기다리다가 차가운 커피를 받아들고 차로 이동하면서 한 모금을 들이켰다. 한 모금의 커피가 혀끝을 지나면서 나고 모르게 “다음에 또 마셔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코넛의 달달한 향과 커피의 쌉쌀한 향이 아이스속에서 조화를 얼마나 잘 이루었는지 한 모금을 넘기기도 전에 다음번에 또 먹을것부터 기대하게 했다.

     

그러면서 갑자기 아내의 얼굴이 생각나며 아내에게 이 커피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커피를 마시며 아내가 어떤 표정을 지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아내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하경자매가 만들어준 그대로 보존하고 싶어 컵을 흔들 수가 없었고, 아껴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어릴 적 엿단지에 나도 모르게 손이 가듯 빨대에 연거푸 입이 갔다.

     

커피를 마시며 나도 모르게 내 인생도 이런 커피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모금을 맛본 후 또 먹고 싶듯이 나를 만난 사람들이 첫 만남도 좋아해 주고, 또다시 만나고 싶어 하고, 누군가에게 나를 기쁘게 소개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렇듯 향기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기도가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기도 중 갑자기 주님이 “너는 나의 커피야” 그러시는 것 같았다. 나는 너를 처음 볼 때도 설레었고, 지금도 설레고, 너는 내가 온 땅에 자랑하고 싶은 나의 커피라고 하시는 것 같았다. 가슴이 뭉클하다. 바위틈 은밀한 곳에 숨은 술람미 여인에게 신랑이 산들을 넘고 언덕들을 넘어 달려온 후 몰약즙이 떨어지는 손을 문빗장에 밀어 넣듯 내 마음의 문을 주님의 사랑으로 두드리시고 계신 것 같았다.

     

“너는 나의 커피야”라는 이 달콤한 한마디에 나 자신이 잘 섞인 커피처럼, 쓴맛과 단맛이 어우러진 내 인생의 맛 위에 주님의 향기만 전해지게 해 달라는 고백이 나온다.

     

“사람들이 나를 통해 주님을 떠올리고, 주님을 사모하게 된다면 저는 그것으로 충분해요”라는 고백이 나온다.

     

홍형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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