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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조건 한 놈만 패!!!

영화 ‘주유소 습격 사건’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이다. 어느 날 동네 주유소에서 패싸움이 벌어지게 된다. 단순 무식형 무대포라는 인물은 떼거리로 뭉개지는 싸움판에서, “왜? 나만 따라와”라는 질문에, “나는 무조건 한 놈만 패!”라고 대답하며, 한 놈만 죽기 살기로 따라가서 패기 시작한다.

     

우리교회 연못 근처에는 닭장에서, ‘나는 무조건 한 놈만 패!!!’라는 현실판 주유소 습격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교회 닭장에는 크게 두 품종의 닭들이 있다. 한국 시골집에서 많이 봐왔던 뉴햄프셔종과 용모가 화려하고 머리숱이 많아 눈을 잘 찾을 수 없는 실키(Silkie)라는 종이다. 이 두 종은 마치 유대인과 이방인처럼 한 지붕 아래 살아가고 있지만, 함께 섞일 수 없을 것 같은 부류 같다.

     

그런데 실키종 중에 유독 목덜미에 깃털이 빠져 속살이 보이는 한 녀석이 있다. 궁금한 나머지 닭장 앞에 잠시 앉아 그 녀석을 관찰하고 있는데 금새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 이유는 닭장에서 제일 멋지게 생긴 수탉 한 마리가 이 녀석만 쫓아다니면서 공격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 수탉은 실키(Silkie)종의 다른 두 녀석에게는 옆을 지나가도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는데, 유독 한 녀석만 못살게 굴고 있는 것이다. 다른 두 녀석은 수탉에게 공격을 받고 있는 이 녀석이 불쌍해 보였는지, 가끔씩 수탉을 공격하면서 하지 말라고 하지만, ‘나는 무조건 한 놈만 패!!!’라고 쫓아다니는 수탉을 당해낼 재간은 없어 보였다.

     

나는 이 수탉의 엉뚱한 집요함을 묵상하면서, 사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을 떠올리게 되었다. 예수님에게는 늘 수많은 무리가 주변에 있었다. ‘수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랐지만, 예수님은 한 번에 한 사람을 사랑하고 그와 그녀에게 선한 영향을 미치셨다. 이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건,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일상을 긍휼의 렌즈로 바라보았기 때문이고 이것이 그분의 일상의 리듬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끊임없이 영혼들을 만나주셨다. 그러나 그분은 한 번에 한 사람에게 다가가셨다. 우리는 종종 사람들과 가까워져야 할 때마다 기대보다는 좌절감과 피로감을 느낀다. 그리고 우리는 사랑하기 쉬운 사람들을 사랑하기를 좋아한다. 누구보다 목회자인 내가 그렇다.

     

주님께 “저를 통해서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라는 기도가 아니라, “제 안에서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라는 기도를 해본다. 그럴 때만이 평범한 우리의 일상을 긍휼의 렌즈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모두에게 해주고 싶은 것을 한 사람에게 해 준다면, 천국에서 우리가 아는 얼굴은 꽤 많을 것이다.

     

이권율 목사

 
 
 

샬롬….

     

주일 식사 방법에 대해 함대별로 고민해 주시고 의견을 나누고 답해주셔서 감사해요. 함대들의 답변 중에 “우리 함대는 이렇게 하길 원하지만 결정되는 대로 따르겠습니다”라는 답변을 보면서 우리 교회 DNA와 같은 유연성과 배려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의견들에 감사합니다.

     

1. 함대의 목적은 영혼 구원과 서로를 예수님의 제자로 세우는 친교입니다. 어떤 일이든 목적을 상실하면 변질되기에 의견이 분분하다면 목적을 상기해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주일 식사는 단지 먹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세워주는 친교를 위한 매개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가정에서 모여 먹고 마시는 것을 식사가 아니라 성찬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기억하며 서로를 세워주는 모임이었기에 “성찬”이라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2. 함장님들의 답변을 보면서 먼저 제 자신이 나이 먹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같은 1세대들은 주일예배 후 교제를 생각하면 국, 밥, 김치를 떠올립니다. 그런데 3,40세대는 빵을 놓고도, 때론 비스킷과 커피를 놓고도 의미 있게 교제한다는 사실입니다. 세대 간에 이해와 포용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3. 함대별로 올려주시는 의견을 들으면서 생각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나누면 도움이 될 것 같아 나누어 보아요.

     

1) “많은 의견이 분분할 거라 생각됩니다. 사실 9월 한 달 지켜보셔서 아시겠지만 80%는 함대 자체로 음식을 준비해 오셔서 드시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번잡하지도 않고 EM 친교준비(주방의 복잡함)에도 방해되지 않고 참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교회 재정에도 도움이 되고요. 그러나 몇 함대는 지금 하시고는 계셨지만, 함장님이 거의 혼자 감당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그냥 1년에 2번 정도만 고생하면 된다고 하시면서 교회에서 밥을 하기를 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제 생각은 사실 마음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일하고 바빠서 준비 못 하면 마트나 공주떡집에서 반찬 한 가지 사 오면 어려울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남자 성도님도 사오는 것은 할 수 있는 거니까요. 그리고 목사님께서 공식적으로 함장에게만 맡기지 말고 한가지씩 준비해주기를 말씀하신다면 부담 가지고 계시는 함장님들에게 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디서 밥 한끼 먹으려면 사오는 반찬값보다는 더 들 거로 생각합니다. 앞으로 성도가 더 많아져도 이렇게 하게 되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아요.”

2) ”교회 안에 여러 부서가 있듯이 함대별로 친교부장을 세워 친교를 담당케 하면 좋을듯합니다. 그래서 함대원의 상황에 따라(바쁘신 분은 김, 혹은 과일을 부탁함) 준비해 올 것을 알려주어 모두가 동참하게 하면 좋을듯합니다."

     

함대별로 나누어 주신 의견은 몇 함대는 의견을 표현하지 않았지만, 결과는 아래와 같습니다

*13개 함대 - 9월과 같이 함대 재량에 맡기어 친교 하자

*7개 함대 - 함대가 돌아가면서 식사준비 하자

     

4. 투표 결과에 따라 우리 교회 주일 친교는 지난 9월달과 마찬가지로 함대 재량에 맡기어 주일 친교준비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몇 개월간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보강하여 우리 교회만의 친교 문화를 만들어 뿌리를 내리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홍형선 목사

 
 
 

영성일기

     

아내는 ”죽고 싶다“는 말을 가끔 한다. 얼마 전에는 박정순 권사님의 소천 소식을 듣고 달려가 임종 예배를 드리고 난 후, 누워계신 권사님께 “권사님은 좋겠다. 천국에서 만나요.”라고 한다. 그것도 해맑게 웃음 띤 얼굴로 이런 말을 한다. 이런 말을 들을 때면 천국을 얼마나 사모하고 확신하면 이런 말을 할까?라고 생각보다 “사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들면… 목회가 힘이든가? 우울증과 공황장애의 잔재인가?”라는 생각에서 “나 같이 부족한 사람 만나서 고생이 심하구나”라는 자책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나는 이 소리 듣기가 솔직히 싫다.

     

오늘 수요예배 시간에 이권율 목사님이 요한의 순교와 베드로가 옥에서 풀려남을 나누면서 “사는 것은 사명이라”고 한다. 사는 것이 운명이 아니라 사명이란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사명이고, 죽음은 사명이 다하여 하나님께서 천국으로 데려간 것이라고 한다. 말씀을 들으면서 왜 나는 ”아내의 말에 냉소적일까?”라고 생각해 보았다.

사실 나도 죽고 싶을 때가 있다. 천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솔직히 천국에 대한 사모함보다 삶이 버겁게 느껴질 때 이런 생각이 든다. 이제까지 열심히 살았다는 착각 속에서 이제 삶을 살아낼 힘이 없다고 느껴질 때 이런 생각이 든다. 그래서 아내가 천국 가고 싶다는 말이 거슬리는 것 같다. 그런데 사는 것이 사명이란다. 다시 말해 내가 살아있다는 것은 할 일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구약성경의 맨 마지막 장을 보면 죽는 이야기로 끝난다. 모세오경의 맨 마지막 장인 신명기 34장은 모세의 죽음을 소개하고, 여호수아서 맨 마지막 장인 여호수아 24장은 여호수아의 죽음을 소개한다. 사무엘상의 맨 마지막 장인 사무엘상 31장은 두 세대,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소개한다. 역대상 맨 마지막은 다윗의 죽음을 소개하고, 욥기서의 맨 마지막은 욥의 죽음을 소개한다. 구약성경은 이처럼 죽는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왜 그럴까? 사명을 다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구약성경의 마지막은 사명을 다한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그리고 신약으로 넘어오면서 신약성경은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라며 낳는 이야기로 시작하여 계시록 맨 마지막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마쳐진다. 사명을 다한 자에게 하늘나라 생명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아내에게 ”죽고 싶은 이유가 무엇이냐?“라고 물었다. 다행히도 삶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천국에 대한 사모함 때문이란다. 사명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내 영적 상태를 가지고 불쾌해 했던 것이다.

나도 사명을 위해 살아내고 싶다. 그래서 진짜 천국을 사모하고 싶다.

“Revival, not survival”

     

홍형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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