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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근래 저희 가정에 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한국에 계시는 부모님께서 8년 전 어머님의

고향인 전라북도 고창으로 귀농을 하셨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구간을 의미 있고 아름답게 지나가기 위해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내려가셨습니다. 예산이 턱없이 부족했던 터라 아버지는 집을 짓기 위해 비닐하우스에서 숙식을 해결하시면서 집을 지어주시는 분들과 함께 지내셨습니다.

가수 남진씨의 ‘님과 함께’라는 곡에 나오는,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은 아니었지만 두 분의 마지막 인생 챕터를 아름답게 장식할 수 있는 곳이 마련되었습니다. 몇 해 전에는 마을에서 가장 젊은? 이장으로 선출이 되셔서 마을 어르신들을 잘 섬겨드리고 나누면서 삶의 소소한 재미도 경험하셨습니다.

그런데 3개월 전, 아버지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새롭게 선출된 마을 이장님이 자신의 땅이라고 하면서 부모님 집으로 들어오는 길을 돌로 막아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다루었던 내용이 지금 저희 가정에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제 마음을 더 아프게 한 건 아버지의 눈물이었습니다. 이장님을 찾아가 인간적으로 이 어려움을 원만하게 풀어가려고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저희 집 뒤에 있는 밭을 가지고도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대답뿐이었습니다. 결국 저희 부모님께서는 이 일로 인해 한동안 우울증 약을 복용하게 되셨습니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저는 한참을 울었습니다. 아들로서 부모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어주질 못한다는 서러움과 함께, 하나님을 원망하는 눈물이었습니다. 미국에 유학생으로 와서 공부 잘 마쳤으면 한국에 돌아가서 돈이나 벌면 좋았을 것을,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목회자가 되어서 왜 이런 어려움을 겪게 하실까...라는 작은 신음의 소리였습니다. 새벽예배와 금요 기도예배에서 정말 한없이 울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성도님들은 제가 울면서 기도하니까, 저의 영성이 굉장히 좋아졌다고 이야기하는 분도 계셨습니다. 요근래 저는 기도할 때마다 아들을 달라고 울면서 기도했던 한나와 같이 울었던 것 같습니다. 아직도 상황은 현재 진행형(판사가 땅의 감정가를 매기라는 법정 명령만 받은 상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고난과 고통을 통해 저희 가정과 부모님에게 아름다운 고백을 하게 하셨습니다. “고난이 축복이다!”라는 신앙고백입니다.

저희 어머니는 주님께서 밭일로 인해 기도하지 못했던 시간까지 쳐서 기도하게 하신다고 하면서 매일 저녁 교회에서 철야기도를 하시며 주무십니다. 아버지는 이 어려움을 통해 우리 가정이 믿음으로 더욱더 단단히 세워지게 되었고 더 큰 축복을 허락하시기 위해 주님께서 준비시키시고 계신다는 기대에 부푸셨습니다. 저와 제 아내는 영적인 매너리즘에서 빠져나와 기도의 자리를 지키게 되었고, '우리 하나님은 참 수가 많으신 분이시다.'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부모님을 위해 기도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계속 기도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참 별 볼일 있는 인생입니다.

이권율 목사 Lately, our family has been having a lot of trouble.

My parents in Korea moved to my mother's hometown, Gochang, Jeollabuk-do 8 years ago. It was difficult to pass the last section of life meaningfully and beautifully, but they moved. Since the budget was so tight, my father spent time with the people who built the house while providing room and board in a plastic house to build the house.

It wasn't a picturesque house on that green meadow in the song 'With You' by singer Nam Jin, but a place has been prepared to beautifully decorate the last chapter for the two of them. How many years ago were you the youngest in town? After being elected as the head of the department, he served and shared with the village elders and experienced the small pleasures of life.

But three months ago, I got a phone call from my father. It is said that the newly elected village headman said that it was his land and that the entrance to my parents' house was blocked with stones. What we discussed in ‘I want to know’ is now happening in our family. It was my father's tears that broke my heart even more. I went to see Mr. Lee and tried to solve this problem in a humane way, but to no avail. Rather, it was just an absurd reply that they would claim damages even with the field behind our house. Eventually, this caused my parents to take antidepressants for a while.

Hearing my father's story, I cried for a long time. As a son, it was sad that I couldn't be of any help to his parents, and it was tears of blaming God. It was the sound of a small moan, saying, “If I came to the US as an international student and finished my studies well, it would have been better to go back to Korea and earn money. It seems that I cried endlessly during the morning worship service and Friday prayer service. Some members said that my spirituality improved greatly because I prayed while crying. Lately, whenever I prayed, I think I cried like Hannah, who prayed for a son. The situation is still on-going (the judge has only received a court order to give the land an appraised value). However, God allowed us to make a beautiful confession to our family and parents through these hardships and sufferings. It is a confession of faith, “Suffering is a blessing!”

She sleeps all night in church every evening while my mother says the Lord makes her pray even to times she couldn't pray because of her field work. Through this hardship, our family was built stronger in faith, and he was filled with anticipation that the Lord was preparing us to grant more blessings. My wife and I got out of spiritual mannerism and kept the place of prayer, and we experienced that 'Our God is a man of great mercy.' Thank you to those who prayed for our parents. And I ask you to keep praying.

It's a really fun life.

Pastor Kwon-Yul Lee

 
 
 

지난 한 주간 "두려움"이라는 단어와 씨름을 하였다.

지난 주일 2부예배 말씀을 전하면서 예수님이 부자 청년에게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라는 말씀을 나에게 하시면 순종할 수 있을 것 같고, 20년간 섬긴 휴스턴순복음교회를 떠나 선교를 가라면 순종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만약 주님이 20년간 섬긴 이 교회를 무너뜨린 후 주님을 따르라고 한다면 힘들 것 같다는 나의 솔직한 고백을 했다.

한 주간 동안 나는 괜한 말로 인해 고민했다.

'왜 나에게 교회가 무너지고 성도가 흩어지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이 있을까?'라고 고민했다. 그리고 나의 이 고민은 기도가 되었고 그 기도를 통해 두려움은 단지 그림자일 뿐 진정한 실체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말로는 교회는 주님이 하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내가 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 말해 말은 그렇게 안 했어도 내 속 깊은 곳에는 '내가 노력했으니까, 내가 헌신했으니까 이만큼이라도 성장했다.'라는 공로자 의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아닌 노력한 대로 이루어진다는 신념으로 내가 사역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누군가가 "목사님이 열심히 하니까 순복음교회가 이만큼 성장했다"라고 하면 아니라고 손사래 치면서도 속으로는 기뻐하는 내 실체를 알게 되었다. 나의 내면 밑바닥에 이런 것이 있다 보니 교회가 무너지고 교회가 흩어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교회가 무너지고 교회가 흩어진다는 것은 나의 지난 20년의 삶이 무너지고 흩어지는 것이기에 그렇게도 무서웠던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제까지 성령으로 사역하고 성령으로 일한 것이 아니라 내 노력과 신념으로 일했던 것이다. 그래서 한 주간 나의 교만과 연약을 주님께 고백하며 성령 충만을 간구했다.

진짜 주님만 따르는 제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내일부터 케냐 단기선교팀이 떠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선교가 되고 이 일로 교회 위에 성령 충만함이 부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순종하고 하나님은 역사 하십니다.

홍형선 목사

I've been wrestling with the word "fear" for the past week.

Last week, while preaching the 2nd service, Jesus told a rich young man to "sell all his property, share it with the poor, and follow me," I think I can obey, but I honestly confessed that it would be difficult for the Lord to follow the Lord after destroying the church he had served for 20 years.

For a week I've been troubled by unnecessary words.

I wondered, "Why do I have a fear of what if the church collapses and the saints disperse?" And this concern of mine became a prayer, through which fear was only a shadow, and I learned what the true reality was. The Lord said he would raise up the church, but I found out that I actually thought I did it.

In other words, even if I didn't say so, I found out that deep down in me, there was a sense of merit that said, "Because I tried, I devoted myself, the church grew this much." I learned that I did not trust God, but that I did my ministry with the belief that it would come true according to my efforts.


So when someone said, "The pastor worked hard, so the Full Gospel Church grew this much," I knew my true self, who was happy even though I said no. There's something like this at the bottom of my heart As it turned out, there was a fear that the church could collapse and the church could be scattered. And the collapse of the church and the spread of the church was so scary because my life for the past 20 years was collapsing and scattered.


So I have not worked as a minister and worked as a Holy Spirit until now, but with my effort and faith. So for a week I confessed my pride and weakness to the Lord and begged for the fullness of the Holy Spirit.


I prayed to be a disciple who only follows the real Lord.

Kenya's short-term missionary team will leave tomorrow.

I pray that it will become a missionary accompanying God and that the fullness of the Holy Spirit will be poured over the church.

We are obedient and God is history.

Rev. Hong Hyung-sun

 
 
 

영성일기. 6월 15일


요즘 금요예배시에 성령의 은사들을 나누고 있다. 감사히도 금요일마다 성령세례 받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다.

지난주 금요일에는 은사의 목적은 복음증거와 교회를 세우는데 있다면서 방언의 은사와 방언 통역의 은사에 대해 나누었다.

성령세례가 임할때 나타나는 대표적 증거가 방언이다. 그런데 방언을 받은자가 계속 방언으로 기도할때 은사적 방언이 된다. 방언은 영의 기도이고 비밀이기에 내용을 알수 없다. 그런데 어느 순간 방언의 내용이 알아질때가 있는데 이것이 방언통역의 은사다. 그리고 그것을 교회의 덕을 위해 입술로 선포하는 것이 예언이다.


요즘 새벽기도시간에 가능하면 좀 더 방언으로 기도하려고 한다.

오늘은 새벽기도후 아내가 나에게 어느권사님의 동생이 한국에서 심장마비로 갑자기 소천했다며기도해 달라고 한다.

갑자기 전해들은 비보에 권사님을 찾아가니 권사님은 슬픔에 몸과 마음이 무너져 보였다.

이런 권사님에게 어떤 말로 위로할수 없어 기도하자며 어깨에 손을 얹고 방언으로 기도를 시작했다. 그러자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내가 하는 방언기도 내용이 해석되는데 "이때가 슬픔당한 가족들에게 말씀으로 위로할때"라는 감동이 생겨 권사님에게 예언의 말씀을 주셔서 가족을 살리게 해달라고 마무리 기도를 해 주었다.

그러자 권사님 영과 몸에서 힘이 생기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오순절 신학을 공부했고 한국에서 섬기던 교회에서 강한 성령의 역사를 보았다.

그럼에도 나는 자아가 강한 이성적 사람이다. 머리로 이해되지 않으면 내속에서 거부한다. 그러기에 은사보다는 말씀을 강조했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내게 성령의 은사가 없기에 이것을 감추기 위해 이성적인 사람임을 강조한것 같다.


그런데 요즘 방언으로 좀 더 기도하자는 생각이 들어 기도의 자리에 조금 더 머물렀는데 오늘 작은 체험을 했다. 이성에 가두지 않고 하려고 할때 일하시는 성령님을 만난 것이다.


오늘 큐티 본문에 보면 모르드개는 하나님을 섬기는 유대인으로 하만에게 절하지 않았다. 마음은 아니라며 몸만 절하는 시늉을 하면 편안한 삶이 보장될텐데...

그럼에도 모르드개는 자신은 물론 가족과 민족까지 어려움이 있을줄 알면서도 절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기에 자신과 모든 민족이 한날에 죽게되는 위기도 있었지만 결국 부림절이라는 역전을 경험한다.


하나님은 믿는자에게 선교와 교회를 위해 은사를 주셨다. 아멘이다.

그런데 내게 강한 은사가 없다고 내 체면을 위해 이성적인 사람이라는 말로 감출것이 아니라 모르드개처럼 나의 연약을 드러내고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자"가 되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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