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1.25 목양실에서 (Words From the Pastor)
- 순복음 교회

- Sep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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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Sep 26
일전에 아내가 나에게 얼굴이 바뀌어졌다고 한다. 예전 얼굴이 아니라 점점 사나워진다고 한다. 그래서 속으로 “당신이 내속을 긁어놓으니 그렇지”하며 내 얼굴의 변화를 아내와 환경 때문이라고 치부했다. 또 아내가 나에게 얼굴에 대하여 하는 잔소리 중 하나가 “표정관리를 잘하라”는 것이다. 좋으면 좋은 것이, 화나면 화난 것이 그대로 드러난다면서 표정관리를 잘하라고 한다. 아내의 이런 말들이 생각이 나서 거울 앞에서 내 얼굴과 직면했다. 거울을 볼 때마다 최대한 좋은 표정만 짓다 보니 내 얼굴이 괜찮은 줄 알았는데 현실과 직면하고 보니 뚱한 것이 불만이 가득 찬 얼굴이다. 그리고 얼굴이 왜 이리도 큰지… 한마디로 실망이다.
얼굴은 마음의 창이라(점 15:13)는 말이 있다. 마음의 밝고 어두움이 얼굴로 그대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신앙생활은 주님과 함께함 속에서 오는 즐거움인데 내 얼굴이 기쁨이 아니라 불만투성이고 사납다면 나에게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말씀대로 살고 있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나의 삶을 추적해 보았다. 그런데 추적할 것도 없이 평범한 일을 할 때를 넘어 영적인 일을 할 때도 화가 나있는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교역자들과 미팅을 하면서 기도제목을 가지고 통성기도 하자고 한 후 기도하다 보면 입술만 달싹이는 교역자가 보인다. 그 순간 “나이 많은 나도 죽기 살기로 기도하는데…” “자기가 예배인도나 기도할 때는 죽기 살기로 하면서 왜 저래” 하면서 짜증이 난다. 이런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렇듯 이런 짜증들이 모여서 내 얼굴이 사납게 변한다는 것을 알았다.
짜증은 감정이고 느낌이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감정은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긍휼.. ”같은 것이다. 그런데 짜증은 나만 손해 본다는 비교에서 오고, 또 감사를 잃을 때와 쉼을 잃을 때 온다. 그래서 짜증은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도록 마귀가 쳐 놓은 그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면 짜증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그래서 짜증이 날 때 짜증은 나와 상관없음을 선언했다. 짜증을 일으키는 마귀를 향해 나에게서 떠날 것을 선언했다. 그리고 감정에 느껴지는 것을 넘어 아름 다움을 찾아보았다. 짜증을 일으키는 사람을 보면 “그래도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여기면서 아름다움을 찾았다. 긍정적인 면을 찾았다. 그런데 이상하다. 찾고 보니 아름다운 것이 더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짜증의 지수들이 낮아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얼굴이 변한다. 이제 내 얼굴에서 미백의 청순한 얼굴을 찾을 수 없다. 대신 거칠고 주름은 깊어간다. 그렇지만 인자한 얼굴은 내 몫이라는 사실 앞에 모든 것을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아야겠다.
주님! 주님 닮은 마음에서 만들어지는 얼굴이 되게 하소서..
홍형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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