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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스턴 순복음교회의 교회력으로 보면, 4월은 매우 분주한 달입니다. 부활절을 시작으로 크로피시 보일 선교바자회와 아브라함 선교회 봄소풍까지, 다양한 사역들이 이어지며 바쁜 일정을 보내게 됩니다. 게다가 담임목사님께서 안식월을 가지시면서, 많은 성도님들께서 저를 보실 때마다 “목사님, 많이 바쁘시죠?”라는 인사와 함께 따뜻한 격려와 염려의 마음을 전해 주십니다.

     

솔직히 예전 같았으면 숨이 턱 막히는 듯한 부담감 속에서 “이 모든 사역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 마음이 조급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왠지 모르게 기대감이 생기고, 마음에 평안이 자리 잡고 있음을 느낍니다.

     

그 평안이 과연 제 안에 은혜가 충만해서일까요?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저를 혼자가 아닌 우리라고 하는 ‘믿음의 공동체’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결코 혼자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지체들과 함께 감당하는 것이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며 평안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어제 진행된 ‘크로피시 보일 선교바자회’는 역대급으로 풍성한 행사였습니다. 24개의 다양한 메뉴와 체육관 사용, 그리고 아름다운 음악 콘서트까지 여러 새로운 시도들이 더해지며 준비 과정에서 고민과 긴장이 따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성도님 한분 한분의 헌신적인 섬김과 넉넉한 사랑 덕분에 선교바자회를 은혜 가운데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한 성도님의 고백입니다.

“이렇게 큰 선교바자회를 섬기면서 성도님들이 각자에게 맡겨진 일을 기쁨으로 감당하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여러분, 만약 우리가 가장 쉬운 방법을 선택했다면 선교헌금을 드리는 주일을 정하는 것으로 충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선교바자회를 통해 선교기금을 마련합니다. 왜 이렇게 시간과 노력, 그리고 물질을 드리는 것일까요? 그것은 휴스턴 순복음교회 성도님들의 마음이 하나로 모여 우리의 시간과 열정, 그리고 헌신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임 받기를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신학자 N. T. Wright는 선교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경은 창조 세계 전체에 대해 중요한 목적을 성취하시기 위해 끊임없이 ‘선교하고 계신’ 하나님을 보여 준다.”

     

창세 이후 지금까지 선교하고 계신 하나님께, 성도님 한분 한분의 귀한 마음을 모아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섬김을 통해 올 한해도 하나님의 마음이 열방 가운데 전해지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헌신을 통해 놀라운 선교의 열매를 맺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너무 수고 많으셨고 감사합니다.

     

이권율 목사 올림.

 
 
 

봄이 되면서 교회 농장에 생명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어미 염소 세 마리가 각각 두 마리씩 새끼를 낳아 여섯 마리의 새끼 염소가 교회 주변을 뛰어다닌다. 금계와 은계들도 알을 낳기 시작했고, 부화기에 넣고 기다린 끝에 은계 여덟 마리가 태어났다. 육추기에서 두 주를 보내고 세상 밖으로 나온 작은 생명들은 참으로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마음 깊은 곳에서 풍요로움과 감사가 올라왔다.

     

그러나 이 기쁨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어느 날 아침, 축사팀이 소란스러웠다. 은계 우리가 열려 있었고, 여덟 마리가 모두 사라졌다. 사람의 손을 탄 듯했다. 마음이 무너졌다. 생명이 주는 기쁨이 한순간에 분노와 허탈함으로 바뀌었다. 게다가 자라나는 새끼 염소들은 울타리 밖으로 나와 꽃나무와 화초들을 뜯어 먹기 시작했다. 나뭇잎이 있어야 열매를 맺고 성장할 텐데, 나무들은 점점 가지뿐인 모습이 되어 갔다. 풍성함이라 생각했던 것이 어느새 상처가 되는 현실로 다가왔다. 이처럼 축복이라 여겼던 것들이 오늘 나를 괴롭게 하는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오늘 수요예배에서 ‘생명수 여성’ 모임을 통해 한나의 이야기를 다시 들었다. 한나는 남편의 사랑을 받았지만 자녀가 없었고, 브닌나는 남편의 사랑은 덜 받았지만 많은 자녀를 가졌다. 그런데 브닌나가 한나를 괴롭혔다. 두 사람의 이름이 주는 뜻이 마음에 깊이 남았다.

     

한나 — 은혜 브닌나 — 보석

     

보석은 태어날 때부터 갖추어진 것으로 화려하고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그러나 은혜는 다르다. 매일 공급받아야만 존재할 수 있다. 하루라도 공급이 끊기면 살아갈 수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녀가 많은 브닌나가 오히려 한나를 질투했다. 이미 가진 것이 많아 보석 같은 사람이, 하나님만 붙들고 사는 사람을 시기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왜일까?

한나는 이 일이 괴로워서 하나님께 기도했고, 기도 중에 “아들을 주시면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겠습니다”라고 고백한다. 나실인으로 드리겠다는 서원이었다. 그 순간 하나님의 뜻과 한나의 기도가 맞닿은 것이다. 한나가 기도할 때는 사사시대 말엽으로 타락의 정점이었다. 그때 한나는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삭도를 대지 않는 아들로 키우겠습니다”라고 결단한다. 이것이 은혜이다. 순간순간은 막힌 것 같지만,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거기에 내 삶을 맞추는 것, 이것이 은혜이다.

     

문득 나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나의 삶은 한나인가, 브닌나인가?

내 삶에는 처음부터 보석 같은 것이 없는 것 같다. 축복인 줄 알았는데, 보석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오히려 나를 격동케 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것 때문에 주님께 엎드리니 은혜가 임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그림이 그려진다. 염소 우리 주위로 아이들이 가득하다. 칼스 아이들은 학교에 오고 갈 때마다 들른다. 속 썩이는 아기 염소들이 아이들에게 학교에 오고, 교회에 오는 것에 기대감을 주는가 보다. 속 썩이던 동물들이 은혜의 통로가 되는 순간이다. 이런 모습을 바라보는 나에게 주님이 “너는 무엇으로 사느냐?”라고 물으시는 것 같다. 그 물음 앞에 오늘 나는 “한나처럼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입니다”라고 고백해 본다. 그 순간 은혜가 부어지며 오히려 더 큰 감사가 임한다. 잃어버린 은계들보다, 상한 나무들보다, 내 마음을 다시 하나님께 향하게 하신 것이 더 큰 은혜이기 때문이다.

 

홍형선 목사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놀이터 펜스주위에 재작년과 작년에 대나무 화분을 70여 개 심었다. 대나무가 잘 자라는지, 봄을 맞아 새롭게 죽순은 잘 올라오고 있는지 궁금하여 새벽기도 후에 놀이터 주위를 둘러보러 갔다.

     

둘러보다 보니 한쪽에 쓰레기가 쌓이고 잔디를 깎을 때마다 빼어먹었는지 잡초가 무성한 부분이 보였다. 아마도 사각지대이다 보니 작년 겨울부터 잔디를 깎을 때마다 스킵되었나 보다. 그 틈을 이용해 야생 씀바귀가 무성히 올라와 있다. 이런 모습을 보는 순간 쓰레기가 쌓인 것도, 잔디를 깎을 때마다 스킵된 것도 책임론이 따져지면서 살짝 짜증이 난다. 그래도 내 눈에 보였으니 어찌하랴라는 마음으로 풀 속에 들어가 쓰레기를 줍는데 문득 주님이 이렇게 나를 보신 후 내 안에 쓰레기를 주워 주시고 잡초를 뽑아 주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이 나를 감찰하시다니…

     

생명수 여성 수요예배시간에 권율 목사님께서 하갈에 대하여 나누어 주었다. 하갈은 애굽 소녀이다. 어찌 된 영문인지 아브라함과 사래의 가정에 종으로 팔려왔다. 틴에이져가 되면서 사람들이 “피부가 곱고 예쁘다고, 얼굴이 피었다”라고 칭찬한다. 하갈도 멀지 않아 좋은 남자 만나서 사랑받을 것을 꿈꾸었다. 그런데 어느 날 여주인 사래가 목욕을 시키더니 주인 아브라함의 침소에 들어가라고 한다. 종이기에 어쩔 수 없다. 자기가 꿈꾸는 이상형이 있음에도, 자신의 몸을 80 노인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얼마 후 몸이 이상하다. 졸리고 구역질이 나온다. 임신이다. 주인의 씨를 임신해서인지 자신의 행동이 여주인 사래의 눈에 거슬렸나 보다. 그 후로 사래가 학대한다. 일도 더 시키고 모멸감을 준다. 이사실을 아브라함도 알면서 모른 척한다. 이 집에 있다가는 죽을 것 같다.

     

그래서 이 집을 도망치기로 하고, 광야로 숨어들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목마름 속에서 헤매다 겨우 우물을 찾았다. 그런데 거기에 하나님이 미리 와 계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하갈에게 “여주인 사래에게로 돌아가라고 하신다”. 지긋지긋한 삶이 싫어서 도망쳐 나왔는데 지긋지긋한 삶의 한복판으로 다시 가란다. 그리고 성경은 어떤 설명 없이 하갈이 주인 사래에게 돌아갔다고 한다. 그리고 하갈은 자기가 만난 하나님 이름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고 한다.

그러니까 하갈은 하나님이 자기의 아픔과 상처와 억울함을 알고 있다는 사실 앞에 여주인에게로, 지긋지긋한 삶으로 돌아간 것이다. 정확히 말해 하나님이 다 아신다는 사실 앞에 몸은 사래에게 갔지만 마음은 하나님에게로 간 것이다.

     

하갈이 광야에서 만난 하나님은 문제를 해결해 주신 하나님이 아니었다. 보고 계시고 살피시는 하나님이었다. 그 하나님이 나를 보고 계신다. 지난 57년을 보고 계셨고, 휴스턴순복음교회와 함께한 23년을 보고 계신다.

     

그리고 내 마음의 사각지대에 쌓여 있던 것들이 내 눈에는 이제야 보였지만, 주님은 이미 오래전부터 나의 사각지대를 보고 계셨음을 알게 하신다.

     

그렇다면 나는 오늘 어디에 있든지 허락하신 곳에서 떠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돌리는 사람이 되기를 원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감찰하시는 하나님!

내 마음이 언제나 주께 향하게 하소서

홍형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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