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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9.25 목양실에서 (Word's Form the Pastor)

오랜만에 우성만목사님 가족과 만남을 가졌다. 마지막 졸업논문을 쓰느라 고생해서인지 갸냘픈사람이 더 야위어 보인다. 이야기 도중 “하나님은 정말 계산할 줄 모르시는 것 같아요. 상식이 없는 것 같아요”라고 한다. 논문을 마치면서 인생의 진로를 고민하는데 자기에게 3가지 길이 있는 것 같다고 한다. 하나는 지금 일하고 있는 IT계통에서 계속 일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교수의 길을 가는 것이고, 마지막 하나는 선교사로 나가는 것이라고 한다. 이중에 가장 쉬운 길이 IT계통에서 일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재정적으로도 여유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감동주시기를 이 세 가지 중 첫 번째로 내려놓아야 하는 것으로 제일 편하고 미래가 보장된 것 같은 IT계통에서 일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계산적으로 보면 가장 안정적인 길인데… 하나님은 가차 없이 아니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계산으로, 상식으로 이해 안 되는 것들이 참 많다. 더욱이 주의 일에는 많다. Day spring(수단난민학교)의 여름방학을 맞아 휴스턴에 잠시 들렀던 딸아이가 이집트로 돌아갔다. 딸아이를 볼 때마다 “좀 더 공부해서 전문성 있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휴스턴에 와서도 재미있는 물건을 보거나 맛난 것이 보일 때마다 수단난민학교 아이들과 연결시키는 모습에 차마 입이 안 떨어진다. 그래서 고작 하는 말이 “시집가야지”라는 말과, 고작 하는 행동이 여행가방 싸는 딸아이에게 내가 먹으려고 사놓았던 과자봉지를 슬며시 주는 것뿐이다. 교회가 VBS로 바쁘다. 다음 주는 20명이 튀르키예로 선교를 간다. 모든 것이 쉽지 않고 계산이 안 맞는다. 정말 하나님은 계산할 줄 모르는 것 같다.

     

그런데 하나님의 역사는 계산할 줄 모르는 역사이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오셨다 “ ”그것도 십자 위에서 나의 죄를 지고 죽기 위해 오셨다 “ 어떻게 하나님이 죄인을 위해 죽으시는가? 계산이 안 되는 이야기이다. 성경은 처음부터 계산이 안되고 비상식적인 이야기이다. 그래서인지 믿음의 사람이라 불리는 바울도 그랬고 베드로도 그랬다. 짐 엘리엇도, 언더우드 선교사도 그랬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렇게 계산이 안 되는 행동들을 통해 하나님의 일들은 이루어졌고,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계산을 못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관심과 나의 관심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최대 관심은 일보다 나의 변화이다. 예수님과 함께 하며 예수님을 닮아가는 나의 삶이다. 이렇듯 예수님의 사업 품목은 내 생각과 다르다. 그러니 나의 계산방법과 다를 수밖에 없다.

     

짐 엘리엇 선교사님의 일기장에 기록되었다는 이 한 문장이 오늘따라 가슴 깊이 다가온다. “He is no fool who gives what he cannot keep to gain what he cannot lose. 자기가 지킬 수 없는 것을 주고, 잃을 수 없는 것을 얻는 자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다.” 영원한 것을 위해 영원하지 않은 것을 포기할 수 있다면 이것이 지혜가 아닐까?

이것이 정말 최고의 계산이 아닐까?

     

홍형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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