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Search

“누군가의 새벽 무릎이 교회의 하루를 세운다”는 말처럼 날마다 우리 교회 새벽예배를 지켜주시는 시니어 그룹들이 있다. 밤잠을 설치어 한두 시간 주무시고도 오시는 것 보면 이분들에게는 새벽예배는 사명이다. 그러기에 이들의 기도는 우리 교회의 등불이다. 생각할수록 너무 고맙다. 고마운 마음에 새벽예배를 마친 후 바닷가에 가자고 했다. 이렇게 급조해서 모집한 10분을 교회 15인승에 모시고 free port바닷가를 향해 출발했다. 그런데 출발부터 에어컨에 문제가 있어 보였지만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덥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1시간 이상 달려 휴게소에서 보니 모든 분의 윗옷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앞 좌석에는 차갑지 않아도 에어컨 바람이 있어 몰랐는데 뒷좌석은 많이 더웠나 보다.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이렇게 땀을 한번 흘리면 몸에 좋다”“돈 주고 땀 빼는데 공짜로 땀 빼니 얼마나 좋으냐”면서 웃어 주신다.

     

또다시 달려 바닷가에 도착했다. Free port 바다는 자동차로 해안가를 달릴 수 있다. 그래서 차를 몰고 바닷가로 들어갔다. 사실 어르신들에게 이 광경을 보여주고 싶어 1시간 30분을 달려온 것이다. 그런데 5분 정도 달리다 보니 모래가 마른 곳이 나와 빨리 달리면 되겠지 하고 차를 몰고 들어선 순간 차가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더니 헛바퀴만 돌았다. 모래밭에 차가 빠진 것이다. 그래서 모두 차에서 내린 후 남자분들에게 밀어달라면서 차를 움직여 보니 계속 헛바퀴만 돈다. 큰일이다. 그런데 나의 당황스러워하는 모습이 어르신들 눈에 들켰나 보다. 어느 분은 나뭇가지를 주워오고 어떤 분은 손으로 모래를 치운다. 또 어떤 분은 도움 요청을 위해 어디론가 가신다. 그러면서 나에게 걱정 말라고 하신다. 그때 3대의 사파리카를 타고 달리던 젊은 여성들이 달려와 도와주겠다고 한다. 어디론가 도움 요청을 위해 가신 분은 삽을 들고 있는 어떤 분을 모시고 왔다.

     

삽으로 모래를 파내고 젊은 아가씨들이 밀어주어 차를 모래밭에서 빼낼 수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모든 분이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이젠 죄송함을 넘어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그러자 어느 분이 우리 교회 좋은 교회라면서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 주셨다”면서 감사를 표한다. 그래서 “요즘 천사는 수영복 입고 나타나네요”라고 답하며 웃었다. 돌아오는 내내 100도 가까운 날씨에 에어컨 없는 차에서 더위로 편찮으실까 봐 건강을 위해 기도했다. 그러면서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수를 실수라고 여기지 않고 덮어주시는 넉넉함이 고맙다. 팀켈러 목사님은 ”왕의 십자가“라는 책에서 하나님을 춤추시는 하나님으로 표현한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서로를 높이고 찬양하고 격려하면서 온전히 하나가 되어 춤추신다고 표현한다. 오늘 시니어들의 격려 속에서 하나됨을 배웠다. 그리고 이것은 즉석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만들어진 춤이었을 알게 되었다. 나로 춤추게 하는 이런 1세대가 있어 참 행복하다.

 
 
 

몇 달 사이에 함께 신앙생활 하셨던 성도님들 다섯 가정이 한국으로, 타주로 연이어 이주했다. 이구동성으로 교회 때문에 행복했다 하고, 예배 때문에 떠나기 싫은데 어쩔 수 없다면서 눈물지으며 떠나신다. 한분 한분 떠나실 때마다 애써 웃으면서 축복하고 떠나보내지만 내 마음은 불편하다. 가족구원을 위해, 직장을 위해 또 주신 사명 때문에 떠난다고 하시지만 내게는 무엇인가 빈자리가 생긴 듯 공허한 것이 씁쓸하다. 그래서 요즘 약간의 우울감마저 드는 것 같다. 사탄은 이 틈을 노려 “네가 너무 오래 있어서 그래”라며 속삭이는 것 같다.

     

요즘 새벽예배시에 에스겔서를 나누고 있다. 예루살렘에서 제사장으로 섬기던 에스겔이 포로로 잡혀 바벨론에 끌려온다. 1200km 이상 걸어서 끌려온 후에도 바벨론의 변두리 그발강 운하공사에 막 노동꾼으로 투입된다. 제사장의 옷이 벗겨진 지는 이미 오래이고, 곱디곱던 손이 연장으로 거칠어지고 갈라져 흉측하다. 피부는 거친 태양에 검게 변했다. 잠자리도 여러 사람들과 찌든 냄새 진동하는 천막에서 웅크리고 자다 보니 짐승 같은 삶이라 느껴졌다. 이처럼 그발강은 삶이 곤두박질한 것처럼 느껴지는 곳이다. 몇 개월 전에 금요예배를 통해 큰 은혜를 나누어 주셨던 남수단의 박경호선교사님께서 재방문 하였다. 영국 유학에 이어 달라스 남침례교단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할 때,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유명한 목사님 두 분과 자칭 차세대 3인방이라고 했는데, 두 분은 대형교회 목회자가 되어 교계를 이끄는데 자신만 전기도 없고 문명이 끊어진 남수단에서 40번 이상 말라리아에 걸리며 고생하고 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고생하고 있다. 아마 박경호 선교사님에게 남수단은 그발강가인 것 같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발강가에서 에스겔을 찾아오시고 말씀을 주시고 사명을 주신다.

     

에스겔이 하나님을 만난 곳은 예루살렘이 아니라 그발강가이다. 그리고 에스겔의 아름다움은 그발강가에서 신세한탄하는 일에 빠지지 않고 찾아오신 하나님을 알고 부르심에 아멘 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에스겔에게 이상을 보여주며 새로운 시즌으로 이끄신다. 요즘 박경호선교사님도 매주 1000여명의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 이 아이들은 남수단과 아프리카를 일으킬 하나님의 비밀 병기이다. 이것은 남수단이라는 그발강가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런 면에서 내가 어떤 그발강가에 서 있더라도 하나님을 보고 느낄 수 있다면 새로운 시작 이다.

     

비전집회가 다가오고 있다. 23번째이다 보니 전통은 있지만 생명력이 약해지는 느낌이다. 23년 전에 “주님 없이 못 산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나 자신부터가 간절함이 없다. 그런데 성도님들을 떠나보내며 마음이 슬프다. 하나님이 나로 그 발강가에 서게 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비전집회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주여! 주여! 주여! “라고 부르짖어야겠다.

내게 뉴 시즌이 기다리고 있다.

 
 
 

작년 한 해는 교회가 제일 성장한 한 해였다. 매주 새 신자가 있었고 대다수가 잘 정착했다. 목회자에게 교회가 성장하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아이러니는 작년 한 해가 내게는 참 어려웠다는 것이다. 교회는 성장하는데 나는 어려웠다. 워싱턴주 타코마의 작고 어려운 교회로 사역지를 옮긴다고 발표했다가 성도님들의 간청으로 철회한 후로 참 어려운 시간을 보내었다. 토네이도와 허리케인 같은 환경적 어려움도 있었지만 표현할 수 없는 내면적 어려움들이 있었다. 그래서 내 생각에는 23년간 휴스턴순복음교회를 섬기면서 제일 어려운 한 해였던 것 같았다. 그러기에 ”순종해서 가기로 했다가 순종으로 남기로 했는데 왜 내게 이런 어려움을 주시냐 “고 하나님께 질문이 있었다.

     

어려움과 질문속에 하나님은 내게 ”교회“라는 답을 주시는 것 같았다. 교회를 아프게 했다는 것이다. 내게 확신도 있었고, 가족도 모두 찬성하여 작은 교회를 섬기겠다며 사임을 이야기 했는데 이것이 주님의 신부인 교회(성도들)를 아프게 했다는 것이다. 주님은 이것이 싫다는 것이다. 사임소식에 아버지가 자식을 버린 것 같고, 남편이 아내를 버린 것 같다며 슬퍼하던 성도님들의 모습이 떠오르며 주님께서 자기가 사랑하는 신부들을 힘들고 아프게 했다고 질책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예수님이 얼마나 교회를 사랑하시는지가 느껴졌다. 그러나 내 속에는 “나는 순종한 것 밖에 없었다“는 항변이 있었다. 솔직히 억울하고 이해가 안되었다.

     

그런데 새벽예배 시에 디모데전서를 묵상하는 가운데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다툼이 일어난다(딤전 6:5)”는 말씀이 나를 터치했다. 이제까지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사람을 종교 장사꾼 정도로 생각했다. 발람선지자처럼 은사를 이용하여 개인의 부와 명예를 취하는 자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나의 순종에 이런 모습이 있었음이 보였다. “나는 너희와 달라, 20년 섬긴 교회도 놓고 작은 교회로 갈 수 있는 사람이야, 나는 이 교회도 성장시킬 수 있어 “라는 내 의가 보였다. 그리고 이런 내 의도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것과 같다는 사실이 느껴졌다. 그래서 나를 순결케 하고 교회도 순결케 하시려고 이런 시간을 주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감사한 것은 성장하며 어려웠다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연약을 배려한 전적인 은혜이다. 40년 광야가운데 의복이 해어지지 않았던 은혜이다.

     

사무엘이 다윗에게 찾아와 강권적으로 기름을 붓고 왕이 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런 다윗에게 다가온 것은 10년 이상 쫓기는 삶이다. 그런데 다윗은 “내가 언제 왕이 되겠다고 했어요. 언제 내게 기름 부어 달라고 했어요”라고 한 번도 항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만 의지한다. 무슨 말인가? 내 의가 없다는 것이다. 아니 내 의가 치밀어 오르기에 더욱 주님만 바라보았다는 것이다. 경건을 이익의 도구로 삼지 않기 위해서는 만인의 모델인 다윗(사 55:5)에게 배워야 한다.

     

홍형선 목사

 
 
 

Address: 1520 Witte Rd, Houston, TX 77080

Contact Us: 713-468 2123 l fghouston1959@gmail.com

© 2017 by Full Gospel Houston. All Rights Are Reserved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