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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일기. 1월 11일

     

주일예배를 인도하면서 힘이 든다는 생각을 넘어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목회자로서 예배 인도하다 죽으면 이보다 더 큰 영광이 있겠나 싶어 온 힘을 다해 예배를 인도했다. 주일예배와 함장모임 후 갑자기 쉰 목소리가 나면서 말하기가 어렵다. 오랜 시간 통성기도를 인도해도 목이 잘 상하지 않았는데… 오랜만에 쉰 목소리가 났다. 목소리가 쉴 뿐 아니라 몸도 나른하다. 그래서 운영위원회 모임 등 몇 가지 일을 서둘러 마치고 평상시보다 조금 일찍 집으로 돌아오면서 늘 그랬듯이 “오늘 잘 쉬면 괜찮아지겠지”라고 생각했다.

     

종종 성도님들은 나를 향해 잘 먹고 아프지도 않는다며 건강체질이라 한다. 그럴 때면 겉으로는 웃어주며 속으로 “건강체질이 아니라 정신이 강해요”라고 말없이 항변하곤 했다. 실제로 허리디스크로 2주간 누워있던 시간들을 제외하고 아파서 출근 못 한 날이 별로 없다. 설령 아파도 쉬는 월요일에 몰아서 아팠던 것 같다. 그러면서 나는 아파도 꼭 월요일에 아프다고 항변하며 나의 열심에 나 스스로를 칭찬하곤 했다. 이런 나이기에 젊은 사역자들이 아파서 출근 못 한다고 하면 쉬라고 하면서 속으로 “이렇게 정신력이 약해서 어떡하냐“고 평가하며 자만했다.

     

늘 그렇듯 이번에도 하루 쉬면 괜찮아지겠지 하고는 월요일 새벽기도에 참석 못한 대신에 오후부터는 약속된 만남도 갖었다. 늘 그렇듯이 월요일 오전의 쉼으로 이긴 것 같다. 그런데 화요일 새벽기도 시간에 기침과 목이 아파서 통성기도하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일정대로 하루일과를 마치고 집에 들어갔더니 기침이 심하다. 기침과 불편함으로 잠을 잘 수가 없다. 내 몸이지만 내가 컨트롤을 할 수가 없다. 그저 힘들기에 고쳐달라는 기도만 나온다. 고쳐달라는 기도 속에 젊은 교역자들이 아프다고 할 때 ”정신력이 약하다“고 말한 것과 나는 아파도 월요일에 아프다고 말하던 내 모습이 보이면서 회개가 나왔다.

무엇보다 내가 잘나서 월요일만 아픈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로 목회하도록 건강 주시고 설령 아프더라도 월요일에 쉬게 해 주신 것인데 내가 잘나서 그런 줄 알고 교만에 빠졌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교만의 잣대로 사람들을 평가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기침으로 잠 못 이루며 뒤척이는 나에게 이런 교만을 보여주신다.

     

이번 감기가 자잘하게 길다. 그러기에 병원 심방을 제외하고는 주어진 모든 일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감기가 나의 연약과 교만을 직시하게 한다. 그래서 일상의 삶에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게 한다.

     

홍형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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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일기. 1월 1일

     

밤 12시에 드려지던 송구영신 예배를 대신하여 몇해전부터 신년기도회를 시작했다. 올해는 1월 1일 낮 12시부터 저녁 6시까지 6시간 연속 기도회를 선포하고 6개의 각 기관 찬양팀이 1시간씩 연속으로 찬양함 속에 성도님들은 한해를 주님께 의탁하며 6시간 동안 온전히 기도해도 되고, 상황에 따라 1시간, 2시간씩 기도하자고 했다.

여선교회들이 번갈아 가며 기도하러 오시는 분들을 위해 떡국을 준비해 주었다. 목회자들은 틈틈이 성도님들을 위해 안수기도해 주었다. 그러다 보니 나 또한 6시간 동안 150명 이상을 안수한 것 같다. 처음에는 성도님들의 상황에 맞게 기도해주려고 하다 보니 어느새 나도 모르게 이성의 기도가 되어 기도문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기도하시는 성도님들에게 가까이 가는 것이 어렵게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손만 얹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만 하자고 마음을 먹고 안수하다 보니 편한 마음으로 기도해 줄 수 있었다.

     

기도 중에 어느 성도님의 머리에 손을 얹자 음식냄새가 내 코끝에 전해졌다. 다른 분들에게서 나는 화장품이나 향수냄새가 아니라 땀과 음식이 뒤엉킨 냄새이다. 이 냄새가 코끝을 지나 심장까지 전해지면서 나도 모르게 조금이나마 멀어지려고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이 냄새의 이유가 느껴졌다. 떡국으로 성도님들을 온종일 대접한 냄새라는 것이 느껴졌다. 이분 또한 여성으로 좋은 향수 뿌리고 나올 수 있음에도 온종일 섬기다 보니 향기 나는 냄새를 포기했다는 사실이 느껴지자, 이분이 예수님의 제자이고 예수님이라는 감동에 내 안에서 울컥하며 눈물이 났다.

     

머리 둘 곳 없을 정도로 복음 전하고 섬기신 예수님에게도 분명 이 냄새가 났을 것이다. 그래서 나다니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분명 예수님에게서 나는 냄새는 고급진 분냄새가 아니라 섬김 속에서 나는 땀 냄새였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예수님을 찾고 쫓는다고 하면서 고급진 분 냄새나 향수 냄새에 취해가고 있었다. 그래서 내 손에 마음까지 얹고는 예수 이름으로 축복해 달라고 기도하다가 이분의 아름다움이 느껴져 이분의 아름다움을 내게도 있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2024년이다. 나는 어떤 냄새를 쫒고 어떤 냄새를 풍기기를 원하고 있는가?

내 주위에는 예수님 냄새가 배어 있는 분들이 참 많다. 그래서 2024년이 기대가 된다.

     

홍형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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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일기. 12월 28일

     

주초에 크리스마스 연휴가 앞으로 몇 년간 없다면서 딸아이가 가족여행을 준비했다. 그래서 Branson MO으로 성극 “에스더”를 보기 위해 차에 음식을 가득 싣고 출발했다. 10시간의 긴 운전이지만 이제는 대다수 시간을 아들이 운전하기에 큰 부담이 없다. 이렇게 잘 자라준 자식들이 고맙다.

     

휴스턴에서는 울긋불긋한 단풍을 보며 출발했는데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앙상한 가지로 겨울 냄새가 물씬 난다. 그런데 앙상한 나무들 속에 어울리지 않게 짓 누런 이파리를 가지고 있는 나무들이 간혹 보인다. 지난여름 가뭄에 죽은 나무들이다. 계절의 변화 속에 움직임이 없는 나무들.. 죽은 나무들이다.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처럼 죽으면 움직임이 없다. 죽으면 변화에 미동도 하지 않는다. 죽으면 질서를 거스리며 고집스럽다. 그런데 오늘 큐티 말씀은 “묵시(비젼)가 없는 백성은 방자히 행한다“ (잠29:18)고 하신다. 방자히 행한다는 것은 질서를 거스른다는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여유로워지는 것은 좋다. 하지만 때론 이 여유로움이 변화 앞에 두렵게 한다. 그래서 도전보다는 안주하게 하고 결단을 미루게 한다. 그런데 죽은 나무를 보면서 안주하려는 모습이 혹시 생명이 끊어진 결과는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에게 생기(루아흐,성령)가 들어가자 군대로 일어났다. 베드로는 요엘서(욜2:28) 말씀을 인용하여 “성령이 임하면 자녀들은 예언하고 노인들은 꿈을 꾸고 청년들은 환상을 볼 것“ 이라고 했다. 하나님의 질서를 따라 변하고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렇다. 결국 성령으로 충만하면 하나님의 질서 앞에 변화가 일어난다. 내가 주인인 것처럼 내 중심으로 사는 방자함이 사라진다. 창조 질서 앞에 순응하는 겨울나무들 속에서 죽은 이파리를 움켜쥐고는 온갖 폼 잡는 고집스러운 죽은 나무의 모습이 하나님의 질서 앞에 내 생각을 고집하는 내 모습은 아닌지.. 안주하려는 내 모습은 아닌지…

이 생각들이 ”살고 싶다. 변하고 싶다“는 외침으로 이어지게 한다.

이번 여행을 통해 내 삶에 성령의 바람이 불어 전능하시면서 세심하신 하나님을 경험하고 싶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따라 변하고 움직이는 사람이 되고 싶다.

평범함 속에서 하나님의 일을 보고 싶다.

     

홍형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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