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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일기 7월 17일

     

오늘 나는 죄를 묵상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그것도 예수 믿기 전에 지었던 부끄러운 죄들을 묵상했다.

     

오늘 큐티 본문에 보면 일곱살에 유다의 왕이 된 요아스가 대제사장인 여호야다와 제사장들에게 23년간 방치한 성전 수리에 대해 지적한다. 성전 수리 명목으로 은을 받으면서도 성전을 수리하지 않음을 지적한 것이다. 여호야다가 누구인가? 대제사장으로 목숨을 걸고 아달랴가 왕자들을 죽일 때 어린 왕자 요아스와 유모를 자기 침실에 6년간 숨겼다가 제사장들과 연합하여 악녀 아달랴를 몰아내고 유다를 개혁한 사람이다. 여호야다에 의해 7살짜리 요아스가 왕으로 면류관을 쓰고 기름 부음을 받을 때 온 이스라엘이 박수를 치며 환영할 정도로 그는 멋지고 신나는 일을 이루어낸 사람이다. 이런 그가 성전 보수를 위해 드려진 은을 사용하면서도 성전 보수를 하지 않은 것이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자신이 이룬 개혁과 공적에 사로잡히다 보니 그래도 되는 줄 알고 그런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여호야다와 개혁에 동참한 모든 제사장의 생각 속에도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성전의 퇴락을 보면서도, 성전 보수비를 용도와 다르게 사용하면서도 어떤 거리낌 없이 23년을 지낸 것 같다.

나 또한 힘든 교회에 부임하여 21년을 넘어 22년째 섬기고 있다. 그동안 출석 성도님들이 18명에서 600명에 이르고, 건물도 크고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내 안에 여호야다와 같이 “그래도 될것”같은 생각이 있다. 그리고 이것이 나만 드는 생각이 아니라 지난 시간 함께 수고한 사람들 속에도 있는 것 같다.

     

그러면 어떻게 이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래서 하나님이 목회 가운데 베푸신 은혜를 묵상했다. 순간순간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은혜를 묵상하다 보니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가 생각났다. 사도바울이 죄와 허물로 죽은 너희(엡2:1)라는 말처럼 나는 사망선고를 받은 사람으로 내 안에 그 어떤 의로움도 없었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하다 신학교를 갔기에 큰 죄를 질 시간도 없었다. 사람들은 나에게 종종 착한 사람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나는 안다. 내 속이 얼마나 추악한지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추악한 생각과 그것에서 옮겨진 행동들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부끄러워 고개를 들수없게 한다. 이런 나를 하나님이 만나주시고 부르시고 기회를 주신 것이다. 이 생각을 하니 부끄럽고 감사할 따름이다. 내 안에 그 어떤 공로의식도 주인의식도 가질 수 없다.

대제사장 여호야다가 멋지다. 자기가 숨겨주고 왕으로 세운 요아스가 성전 보수를 이야기하자 잘못을 인정하고 자기들에게 들어오던 성전보수비를 온전히 성전보수를 위해 받지 않는다. 자신도 모르게 자리 잡은 공로의식을 내려놓은 것이다.

     

그렇다. 나 또한 목회 가운데 베푸신 은혜를 넘어 내가 어떤 존재였는지를 묵상해야 한다. 그곳에는 조금도 내 의가 없다. 전적인 은혜이다. 그러기에 내게 필요한 것은 충성이다.

     

홍형선 목사

영성일기 7월 5일

     

”교회의 본질은 십자가이다“ 라는 지난 주일에 나눈 말씀이 한주간 내 속에서 꿈틀거린다.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한다.(고후4:12)" 는 말씀처럼 십자가는 한 영혼을 위한 나의 부인과 내려놓음에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렇게 내 속에서 십자가가 꿈틀거림에도 이를 조롱하듯 내 의와 욕심 또한 내 속에서 요동친다. 내가 이런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내 안의 추함이 요동친다. 그래서 성도님들을 만나는 것도, 기도하는 것도 사역도 가증스럽고 자신이 없다. 나는 십자가의 메시지를 전하고 십자가를 묵상하는데 오히려 나에게 다가온 것은 추악한 내 자아이다. 그래서 십자가가 나와 상관없는 것처럼 내 자아가 주인 노릇하며 요동친다.

     

이번주 큐티 말씀에 보면 아람왕 벤하닷이 군대를 이끌고 와서 사마리아 성을 에워쌈으로 성안에 먹을 것이 없게 되자 심지어 아이를 삶아 먹기까지 한다(왕하7장). 그러다보니 성밖에 기거하며 성에서 던져주던 음식으로 연명하던 나병환자 네 사람의 배고픔은 극에 달하게 된다. 그러자 이들은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바에는 아람나라 진영으로 가서 항복하고 먹을 것을 얻자며 아람나라 진영을 향해 걸어간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주신 약속을 이루기 위해 이 네 사람의 발자국 소리를 아람군대에게 큰 군대의 소리로 들리게 한다. 그러자 아람군대들이 이스라엘 왕이 헷사람과 애굽왕에게 돈을 주고 군대를 사왔다며 모든 것을 놓고 도망친다. 그래서 네 명의 나병환자가 아람진영에 이르니 군사는 없고 온갖 재물과 먹을 것만 가득하다. 그래서 그들은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닥치는 대로 먹고 은과 금, 의복을 챙기기에 급급하다. 그러다가 문득 “오늘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거늘 우리가 침묵하고 있도다. 만일 우리가 아침까지 기다리면 우리에게 미칠지니 이제 떠나 왕궁에 알리자“며 사마리아 성에 가서 알린다. 이들에게 사마리아 성안에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자기들이 문둥병에 걸리자 성에서 쫓아내고 먹고 남은 음식만 던져주며 짐승 취급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겠다며 간다. 은과 금을 감추고 게걸스럽게 먹다가 그들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이 일로 하나님의 예언이 성취된다. 이들이 결코 아름답고 거룩한 삶을 살다가 사마리아 성으로 간 것이 아니다. 마치 내 안에 온갖 것이 요동침으로 정신없어하듯, 이들도 먹고 좋은 것을 챙기는 욕구를 쫓아 살다가 사마리아 성으로 간 것이다. 그리고 이 행동이 예언을 이룬 것이다.

     

불경기로 힘들어하는 한 가정이 생각난다. 방문해야겠다고 생각하니 급하게 해야 할 일들과 내가 방문한들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에 다음주로 미루어진다. 그 순간 감사히도 네 명의 나병환자가 떠오른다. 그래서 성도님 사업장에 방문하기 위해 자동차에 앉았다. 운전해서 가는 동안 성도님의 얼굴과 함께 나눌 말씀이 떠올랐다.

     

내 상황과 환경을 넘어 십자가를 질 때 예언이 이루어지고 생명이 나타난다. 그래서 나는 내 안에 사망이 역사하도록 십자가로 나아가야 한다.

     

홍형선 목사

영성일기 6월 28일

     

VBS가 끝이 났다. 200여명이 예배 때마다 “아멘”하던 큰 함성도, 찬양과 함께 올라간 손도, 예쁜 몸짓도 그리울 것 같다. 헤어지기 싫다며 우는 아이들의 눈망울도 그리울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아이들의 모습 속에서 VBS가 끝났다는 안도와 기쁨보다 이 험난한 세상에서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딸아이가 Day Spring(카이로내 수단난민학교)을 섬기기 위해 이집트로 떠났다. 학교가 세워지기까지 1년만 섬긴다더니 휴스턴만 오면 아이들의 눈망울이 그립다며 떠나기를 2년이 다가온다.

이번 이집트행 비행기는 프랑스 파리에서 갈아타는데 10시간 정도 시간이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 10시간을 이용하여 가보고 싶었던 박물관을 다녀올 예정이라고 한다. 딸아이가 파리에 도착할 즈음에 걱정이 앞선다. 요즘 유럽의 경기가 안 좋아 소매치기가 많다고 하던데… 여자 혼자 낯선 곳을 여행하다가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길까봐 걱정이 앞선다. 그래서 가족 채팅방을 이용하여 “한번 더 생각하며 조심해서 다녀라“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조금 뒤 아내도 같은 생각인지 “아주 아주 조심히 다녀라”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자 딸로부터 “우리 엄마 아빠는 내가 카이로에 있을 때보다 파리에 있을 때 더 걱정하네 ㅋㅋㅋ”라고 답장이 왔다. 재미있는 지적이다. 딸 아이가 무질서하고 위험하다고 여겨지는 카이로에 있을 때보다 선진국이고 많은 사람이 여행을 가는 파리에 있을 때가, 여행지에 있을 때가 더 걱정이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카이로에서는 딸아이가 하나님이 주신 학교사역과 하나님에게만 시선을 고정하기에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이 있다고 느껴지는데, 여행을 간 파리에서는 딸아이의 시선이 세상에 있다 보니 자기 스스로가 자신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VBS가 마쳐졌다. 아이들이 세상 속으로 걸어가는 뒷모습 속에서 “이 세상에 잠식되지 않고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낼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문득 비전집회 말씀 중 안호성목사님이 전해준 말씀이 생각났다.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1)앉을 자리에 앉아야 하고 2)만남(하나님과의 만남)이 중요 하고 3)시선 처리를(하나님께 고정) 잘해야 한다는 말씀이 생각났다. 우리 아이들이 참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 누구에게 물어보아도 카이로보다 파리가 좋다고 한다. 파리가 더 안전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딸 아이와 나눈 짧은 문자 속에서 진짜 안전한 곳을 배웠다. VBS를 통해 함께 예배했던 200여명의 모든 아이들이 진짜 안전한 곳에 머무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도 안전한 곳에 머물다가 에녹처럼 마지막을 맞이하면 좋겠다.

앉을자리, 만남, 시선처리….

     

홍형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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