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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서 10시간 이상 날아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점심 겸 저녁으로 

가락국수 한 그릇과 물 한 병을 집어 드니 $25이다. 한국에서 만원이면

충분할 텐데… 두 배가 넘는다. 내가 미국에 돌아왔음이 확실하게 느껴진다. 이러면 안 되는데 돈으로 느껴진다.

     

두 달 전 엄마가 며칠째 음식을 못 드시고 위독하다고 하신다. 의사 선생님도 준비하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 가슴 조이며 한국에 갔는데 엄마가 환히 웃으시며 우리 부부를 반겨 주신다. 나를 향해 환히 웃으시며 100점짜리 아들이란다. 고생하는 형이 옆에 있는데도 100점짜리 아들이라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대화 속에 나에게 100점짜리 아들이라고 말한 속내가 보인다. “내가 치매가 있는 것도 아니고 밥도 잘 먹고 배변도 정기적으로 하는데 집에 가고 싶다”라고 하신다. 형에게 그렇게 말해도 꿈쩍이지 않으니까 둘째인 나에게 부탁하려고 100점짜리 아들이라고 하신 것이다. 돌아가실 수도 있다는 말에 여행짐을 챙기며 일부러 검은색 양복을 선택해 가지고 갔는데 환하게 웃으시며 이렇게 응석도 부리시니 감사하면서도 귀여우시다. 농사를 지으실 때는 그리도 거칠던 엄마의 손이 3년째 누워 계시다 보니 손가락은 여전히 틀어져 있어도 매끄럽고 고우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고운 엄마 손을 붙잡고 쓰다듬으며 기도하는 것뿐이다.

     

어머니 병문안과 함께 한국방문 중 또 하나의 계획이 있었다. 그것은 얼마 전 한국으로 이주한 채삼선 권사님을 방문하여 권사님의 어머니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이것이 채 권사님께서 25년간 사시던 휴스턴을 떠나 한국에 가신 목적이다. 그래서 천안에 사시는 서승현장로님 부부를 만나 함께 채 권사님이 정착한 구미로 갔다. 항상 웃으시던 그 웃음 그대로 환히 웃으시며 우리를 반기신다. 그러면서 “엄마가 예수님을 영접했어요”하며 기뻐하신다. 그동안 기회가 될 때마다 예수님을 소개하면 “네가 가는 길과 내가 가는 길은 다르다”면서 강하게 거부했는데, 지난주에 “네가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구나”하시면서 순수히 예수님을 영접했다면서 영접기도 하시는 영상을 보여 주셨다. 어머니가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사실에 감사하면서 권사님의 어머니가 계신 효학교(노인학교)를 찾아가 뵈었다. 93세의 연세에도 깔끔한 맵시로 우리를 맞이하면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신다. 그러면서 채 권사님이 적어준 영접기도문을 매일 두 번씩 읽는다고 고백하시면서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신다고 하신다. 그리고 목사인 내가 방문했다고 하니 채권사님의 어머니를 돌보시는 선생님께서 자신이 교회 권사님이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매주 효학교 안에 예배가 있는데 권사님의 어머니를 매주 예배자리로 인도하겠다고 약속하신다. 이 또한 얼마나 감사한지… 채권사님의 기도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서영자 집사님께서 처녀 때 복음을 듣고 신앙생활을 시작한 교회에 서장로님 부부가 한국에 정착하면서 방문하신 이야기를 해 주신다. 교회에 가보니 자녀가 3명 있는 젊은 목사님께서 20여명의 교인들과 힘겹게 목회하는 모습에 목사님의 둘째 자녀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매월 장학금을 주기로 약속했다는 말씀을 하신다. 장로님의 아드님이 선교사이다. 아드님의 선교를 후원하기 위해 장로님은 생활비가 덜 드는 한국으로 가셨다. 그러기에 모른 척할 수 있는데 주신 감동에 순종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 성도님들이 자랑스럽다. 그리고 이런 성도님들의 신앙이야기가 나의 한국방문에 의미를 주고 있다. 다시 한번 목사도 교회를 통하여, 성도를 통하여 위로받고 힘을 얻게 됨을 배우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마음 편하게 여행을 떠나도록 기도해주고 배려해 주는 성도님들이 고맙다. 나는 행복한 목회자이다

     

홍형선 목사

 
 
 

몇 해 전, KBS에서 “교회오빠”라는 제목으로 한 신앙인의 투병생활을 다룬 다큐멘테리가 방영이 되었습니다. 이관희 집사님이라는 분인데, 아내가 딸아이를 출산하고 산후조리원에서 나오는 날 이분이 대장암 4기 판정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그 아들의 소식을 듣고 난 후에 어머니가 충격을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시고, 자신의 항암치료가 끝난 지 일주일도 채 안되어 아내가 혈액암 4기 진단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절망 가운데 어떻게 한 인간이 믿음을 지켜가며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내용을 모니터 안에 담아냈습니다. 이관희 집사님께서는 처음에는 주님을 원망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저희 가정 이러다 다 죽게 생겼습니다. 주님 살려주세요…” 그런데 그는 육신의 고통과 아픔의 시간을 겪으면서도, “왜 저보고 하루라도 더 살아야 되냐고 물어본다면 서툴고 부족한 점이 많았던 삶이었기 때문에 하루라는 시간을 통해서 제가 조금이라도 온전해지고 싶은 기회를 갖고 싶은 것이죠”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저는 그의 고백을 들으면서 “이제 죽음이 코앞인 그에게 좀 더 온전해진다라고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마지막 고백이 저를 부끄럽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인간의 관점에서는 이런 고난들이 어떻게 해결되는가를 중요하게 여기겠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내가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어떻게 변해가는가가 중요하겠구나….”

     

C. S Lewis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인들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당신이 집이라고 상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 집을 개조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처음에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선 막힌 하수도를 뚫고, 비가 새고 있는 지붕을 고치십니다. 이런 일들은 필요한 작업이라고 당신도 수긍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하시는 일은 전혀 이해가 안 됩니다. 전체 구조 자체를 뜯어고치시고 기초까지도 손을 대시는 게 아닙니까! 도대체 무슨 일을 하시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너무나 힘들고 아픕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선… 당신이 상상했던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집을 건축하고 계십니다. 당신이 생각하고 있던 예쁜 '집'이 아니라 '궁전'을 세우고 계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 자신이 들어와 사시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교리를 외우고 예배시간에만 “주여 주여 주여” 하는 종교생활을 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통해 더욱더 그분을 닮아가려고 애쓰고, 삶 가운데서 성령의 열매를 맺어가는 자들입니다.

     

5월 한 달은 가정의 달을 맞아 개인의 삶 가운데 그리고 가정 가운데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영적인 풍성함이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권율 목사 드림.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계신지 벌써 3년째다. 가끔 화상통화를 할 때면 “언제 오니? 보고 싶다”는 말씀만 하신다. 그럼에도 여러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하면서도 1년에 한 번 찾아뵙는 것으로 거드름을 피운다. 한 달 반 전에는 엄마가 식사를 못하시게 되면서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준비해야 할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그럼에도 연이은 행사로 도저히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형도 상황을 좀 더 지켜보자고 했다. 그래서 고작 할 수 있는 것이 5월에 비행기 티켓 끊어 놨으니 그때까지 견디게 해 달라는 기도였다. 이처럼 자식은 엄마의 생명마저 자신의 스케줄에 맞추려고 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기도마저 들어주셨다. 엄마 또한 아들을 한번 더 보고 싶은지 죽음의 문턱에서 나오셨다.

     

지금 내 스케줄대로 엄마를 보러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에 오르고 보니 잊었던 엄마가 생각나며 한국이 멀게 느껴진다. 그러면서 동시에 조급함이 밀려오며 비행기가 더디 간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 엄마의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3년 가까이 병원 침상에 누워 창문 너머로 변해가는 계절을 보면서 고작 할 수 있는 것이 어느 자식이 찾아올까 하는 기다림 뿐이었을 것이다.

     

땅바닥을 잡고 기어 다닐 수만 있어도 땅 파고 무엇인가 심어서 자식들 나누어줄 기대감에 하루를 훌쩍 보낼 텐데… 이제는 기어 다닐 수도 없어 침상에 누워만 있다. 침상에 누워 고작 할 수 있는 것이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자식들 기다리는 것뿐이다. 그러기에 나의 비행시간처럼 하루가 길게 느껴지면서도 동시에 자식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조급해하셨을 것 같다.

     

오늘 큐티 본문(민 19:11-22)에 보면 시체를 만져 부정케 된 자는 7일간 정결예식을 거친 후 정결한자가 와서 우슬초에 정결케하는 물(붉은 송아지의 재가 뿌려진 물)을 묻혀 뿌려줄 때 정결케된다. 무슨 말인가? 죽음을 만진 자는 스스로 정결케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정결한 자가 정결케 하는 물을 뿌려줄 때 지독한 사망에서 나올 수 있다는 말이다.

     

나는 솔직히 자식 된 도리를 지키기 위해 한국에 간다. 그런데 엄마의 지독한 그리움이 느껴진다. 엄마 스스로는 이 지독한 외로움에서 나올 수 없다. 그래서 정결케 하시는 예수님께 도움을 구한다. 정결케하는 당신의 피로 덮어달라고… 이번 여행에 예수님의 동행하심이 나타났으면 좋겠다.

     

홍형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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