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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에게 하나님의 징계나 훈련이 있다면 무엇일까? 아마도 영혼에 대한 소중함을 잃어버리고 목회의 기쁨을 잃은 상태에서 목회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요즘 교역자들이 새벽예배 시간에 에스겔서 25장을 가지고 나누고 있는데, 에스겔서의 핵심 메시지는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이다. 에스겔 선지자는 멸망한 유다 왕국의 포로로 바벨론에 끌려간 상태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당시 건재한 암몬, 모압, 에돔 족속에 대하여 예언하게 하신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들에게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하신다. 그 이유가 암몬은 하나님의 성전이 더럽혀지는 것을 보고 “아하, 좋다”라고 했고, 형제 유다의 멸망을 보면서 기뻐했기 때문이다. 또 모압은 유다의 멸망 앞에서 “유다 족속이나 이방 족속이나 다를 것이 없다”라고, 우리 표현으로 하면 “예수 믿어도 소용이 없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내 상식으로는 너무하다. 어떻게 형제 유다의 고통을 마음으로 기뻐했다고 심판하고, “그럴 줄 알았다”라고 말한 것 때문에 심판하실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런 의문 속에서 한 번 더 생각해 보니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진다.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자기 백성과 자신을 하나로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이 땅의 성도와 교회를 바라보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 것 같다.

     

그러면서 에스겔서 25장의 핵심이며 반복되는 표현이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겔 25:5, 7, 11)이다. 무슨 말인가? 심판의 목적이 단순한 보복이 아니라 모든 민족 가운데 여호와가 참 하나님이심을 선포하는 것이다.

몇 해 전, 내가 아는 우리 교단의 어느 목사님이 60세에 은퇴하셨다. 교회가 성장하면서 영혼에는 관심이 없고 행정 목회만 하는 자신을 보며 “영혼을 사랑하지 않는 목사가 어떻게 목회하느냐” 하시며 은퇴하셨다. 그 목사님의 마음이 내 마음 같아 이해가 간다. 그래서 이런 내 자신을 회개하며 기도하는데, 이것이 나를 회복시켜 내 주위에 여호와가 하나님이심을 드러내기 위한 일종의 징계나 훈련이라면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까 하는 고민이 들었다.

     

그 순간 하나님은 이 땅의 교회와 자신을 하나로 여기신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하셨고, 교회에 힘이 되는 일을 하자는 마음을 주셨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신다면, 그 사랑은 어려움을 겪는 교회를 외면하지 않는 삶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고통당하는 이웃 교회가 생각났다. 오랫동안 예배드리던 장소에서 억울하게 나와야 하는 교회가 떠올랐고, 작은 헌금이라도 드려 위로를 전해 드리자는 마음이 생겼다. 그러면서 어느 성도님이 생각나, 이것은 물질이 아니라 마음이라며 교회가 드리는 헌금에 매칭하여 함께 동참해 달라고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Yes”라고 응답해 주셨다.

     

하나님께서 나를 다루시는 목적은 정죄가 아니라 회복이며, 나를 통해 “여호와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드러내시는 데 있다. 그날까지 영혼을 향한 첫사랑을 잃지 않고, 교회의 아픔을 함께 짊어지며, 하나님의 마음으로 교회를 세우는 목회자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홍형선 목사

 
 
 

이권율목사님이 한국으로 휴가를 떠났다가 돌아왔다. 그래서 무엇을 느끼고 돌아왔느냐고 물어보니 여러 교회를 보았다고 하면서 “한국교회가 퇴보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몇몇 교회는 부흥을 경험하고 있더라고 한다". 그러면서 부흥하는 교회마다 설교 후 기도가 강력하다든지, 새벽기도가 뜨겁다든지 특징이 있더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 교회의 강점은 무엇인 것 같으냐고 물으니 ”금요예배“라고 한다. 우리 교회의 심장과 같은 금요예배가 우리 교회의 강점이라고 한다.

     

금요예배 시에 통성기도를 인도하면서 교회에 감사한 것을 10가지씩 생각하고 감사하자고 할 때 나에게 믿음 좋은 성도님들의 모습이 떠 올랐다.

     

나는 목회하면서 나보다 신앙이 좋아 보이는 성도님들을 종종 본다. 한 가정이 여름휴가를 서부로 가는데 주일예배 후 출발했다가 금요예배 전에 돌아오는 스케줄이라고 한다. 다섯 식구가 예배시간에 맞추어 비행기표를 구하려면 돈도 많이 들고 시간도 쉽지 않았을 텐데 감동이다. 또 한 가정은 어스틴을 금요일에 갔다가 토요일에 와야 하는데 금요예배를 드리기 위해 토요일 새벽에 갔다가 주일 예배에 맞추어 내려오는 스케줄로 조정했다고 한다. 또 어떤 가정은 칼리지 스테이션에서 매주 한 시간 반을 운전하여 교회에 오셔서 예배 후 한 시간 반을 운전하여 가신다. 그 긴 시간을 운전하여 오려면 수많은 교회들을 지나 오실 텐데…

     

이뿐 아니라 우리 교회 안에는 주어진 자리에서 묵묵히 충성하는 분들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런 분들을 볼 때면 “내가 만약 목회자가 아니고 평신도라면 나는 과연 이렇게 할 수 있을까?" 라고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내가 평신도라면 매주 주방에 들어가고, 맡겨진 영혼들과 씨름할 수 있을까? 이렇게 무모하게 신앙생활 할 수 있을까? 솔직히 못할 것 같다. 그런데 우리 교회에는 일일이 거론하지 않아도 이렇게 헌신하시는 성도님들이 많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목회자가 성도들을 가르친다고 생각한다. 물론 말씀을 전하는 책임은 목회자에게 있지만 목회자는 설교하고 가르치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때론 성도님들에게 배우는 사람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어떤 때는 한 성도님의 예배를 향한 태도가 한 편의 설교보다 더 큰 울림이 되고, 또 어떤 때는 한 집사님의 묵묵한 섬김은 어떤 책 보다 더 큰 도전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엘로힘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 교회에 감사한 것 열 가지를 생각해 보라고 했을 때 기도 가운데 떠오른 것은 건물도 아니었고 프로그램도 아니었다. 바로 성도들이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이런 믿음의 사람들을 보내 주셨다는 것이 감사했다.

     

그런데 이런 성도님들을 보면 나에게 힘이 생긴다는 것이다. 목회하면서 지칠 때도 있지만 바울이 로마교회 성도들을 보며 “나도 너희 믿음으로 위로를 받는다(롬 1:12).”라고 고백한 것처럼 나에게 위로를 넘어 힘을 준다는 것이다. 다시 일어나 도전할 힘을 준다는 것이다.

     

홍형선 목사

 
 
 

이번 주도 해가 저물어가고 더위가 식어질 때면 석양을 등지고 교회에 와서 일을 했다. 장마에 패어진 진입로에 돌을 주어다 패인곳을 메꾸고, 나무들마다 지지대를 세워주고, 입구 화단에 꽃들도 심고… 3일 정도 연이어 일을 했다.

     

20여 년 전에는 교회 건물이 너무 낡아 치우고 청소하다 보니 일을 시작했고, 지금 건물로 이사 와서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일을 했다. 성도님들이나 교회에 방문하는 분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고 일을 했기에 누군가의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하늘 높이 올랐다가 내가 일구어 놓은 것을 누군가가 어지럽 히면 짜증이 났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필요에 의해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 날 때마다 내가 좋아서 한다. 이른 저녁 먹고 편안한 옷차림으로 그 누구의 간섭도 없이 어떤 일에 몰두한다는 것이 좋다. 땀이 비 오듯 흐르고 때론 모기에 물리고 개미에 물려도 그냥 좋다. 말 그대로 내가 좋아서 하기에 어느 날은 밤 10시까지도 하고 어느 날은 일이 마쳐지지 않아도 과감히 놓고 일어난다. 그래서 요즘 일하면서 신이 나 있다.

     

이번 주 묵상하는 주제가 “영광”이다. 하나님이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고 (시 139:13,14), 지으신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 위해서라고(사 43:1, 창 1:27)한다. 이때 영광이라는 단어를 헬리어로 δόξα (doxa)라고 하는데 그 뜻은 “정확한 의견이나 평가를 제시한다”라고 한다. 그러니까 영광을 드러낸다는 것은 내가 모든 창조물에게 하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정확한 의견이나 판단을 제시해 주는 삶을 사는 것이고, 내가 어떤 모양이나 상황이든 내 삶을 통해 모든 만물에게 하나님이 누구신지 어떤 분이신지를 나타내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이라는 것이다.

     

이번 주간에 휴스턴에서 목회하는 한분으로부터 “휴스턴에서 홍목사님과 같이 목회해서 행복하다”는 말과 어느 분으로부터 “목사님이 계셔서 좋다”는 말을 들었다. 감사하다. 이런 말을 들을 때 전에는 겸손의 너스레를 떨며 내가 영광을 취했지만 이제는 이런 말을 들을 때면 하나님이 웃으시며 기뻐하시는 것 같다.

     

이제까지는 꽃나무든 감나무든 모든 것을 통해 나를 드러내고자 했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 달라졌다. 이제는 모든 이들을 기쁘게 하고 좋은 관계를 맺을 수는 없다는 한계는 느껴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하다. 꽃이 예쁘고 감나무가 소중하다. 그리고 작은 들풀마저도 섬길 수 있어 기쁘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만드신 꽃과 나무를 섬기며,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섬기며, 하나님을 드러내는 삶을 오래도록 살고 싶다.

     

홍형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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