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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휴스턴에는 이제 가을이다. 12월에 가을 이라니.. 이제야 나무들마다 울긋불긋 단풍이 지며 한 해 동안 열매 맺느라 힘들었던 나무들은 무거운 짐을 벗듯 한잎 두잎 떨구어 뜨리고 있다. 떨어진 나뭇잎들은 바람에 이리저리 구르다가 어디론가 사라져 간다.

     

교제 중 어느 분이 나무에게서 목회자의 자세를 배운다고 한다. 나무는 그늘을 만든다. 온 에너지를 모아서 푸르른 그늘을 만들면 그 그늘에 온갖 새들이 날아와 쉼을 얻고 둥지를 틀고 보금자리를 만든다. 이처럼 새들이 날아오는 것은 나무가 좋아서가 아니라 그들의 필요 때문이다. 그러다가 나무의 열매가 익어가면 그 열매를 먹기 위해 온갖 새들과 동물들이 모여든다. 이 또한 먹을 것이 있어서이다. 이럴 때면 나무 주위에는 새들의 지저귐과 나무를 오르내리는 다람쥐들의 행복함이 가득하다. 그러다가 찬 바람이 불면 나뭇잎들이 떨어지며 그늘도 사라지고 열매도 없으면 여름내 나무 주위를 맴돌던 친구들이 사라진다. 철저히 홀로 남겨진다. 거기다 나무들이 잎파리를 떨어뜨리면 어떤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도 모른다. 나는 참나무야, 감나무야 하고 외치지만 그 누구도 몰라준다. 철저히 홀로 있는 시간이고 자기 부인의 시간이다. 그러나 나무의 아름다움은 홀로 있는 시간에 있다. 이 시간을 원망하거나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준비하는 시간이다. 뿌리를 뻗고 영양분을 비축하여 다가올 여름과 가을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그러기에 자기를 떠난 새들에게도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도 몰라주는 다른 나무들에게 신경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다가올 여름을 위해 준비한다. 이것이 나무의 정체성이다.

     

앙상해져사는 나무를 묵상하며 목회자인 나를 본다. 나무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분명하지만 목양에는 사계절이 없다. 아니 사계절이 동시에 온다. 푸러름과 열매가 있는가 하면 겨울이다. 주위에 사람들로 둘러싸이고 칭찬이 있음과 동시에 철저한 혼자, 외로움이 함께 온다. 이때가 목회자의 정체성을 정립할 때이다. 목회자의 정체성은 얼마나 많은 새가 내 주위에 날아왔는가에 있지 않고, 얼마나 많은 열매가 맺혀 있는가에 있지 않다. 홀로 있는 시간에 얼마나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는가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겨울을 어떻게 통과하고 있는가에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예수님도 몰려드는 군중 속에 있다가도 군중을 떠나 홀로 남으셨나 보다. 그리고는 홀로 있는 밤을 낭비하지 않으셨다. 아버지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 밤을, 그 겨울을 통과하셨고 결국에는 십자가를 지나 부활이라는 계절을 여셨나 보다.

     

주님! 목회의 사계절을 하나님과 함께 통과하게 하소서…

     

홍형선 목사

 
 
 

새벽예배에 영유아부를 맡고 있는 서승희 전도사님이 말씀 중에 “실수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굳어짐이 문제”라고 한다. 무엇인가가 내 마음을 친다. 그러면서 출애굽기의 바로 이야기를 하신다.

     

출애굽기에 보면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강팍케 했다”는 말씀이 10번 나온다. 그러면서 바로 스스로가 마음을 강팍케 했다는 표현도 10번 나온다. 히브리어로 보면 “카자크”와 “키베드”이다. 모두가 “단단하게 하다”“굳어지게 하다 “라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바로의 마음이 강팍함으로 굳어져 가니까 하나님이 내버려 두셨다는 뜻이다. 로마서에도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버려 두사”(롬 1:26)라고 똑같이 표현하고 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강력한 심판 중의 하나가 내어버려 두심이다. 만약 내 마음대로 살도록 하나님이 내어버려 두신다면 어떨까? 끔찍 하다. 나는 내 자신을 알기에 이렇게 굳어질까봐 두려움이 든다. 그러기에 나에게 실수가 문제가 아니라 죄성대로 굳어지도록 내어버려 둠이 문제이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교제에도 그날이 그날처럼, 사모함이 없는 것이 문제이다.

     

지난 주일예배 후 어느 분이 이런 카톡을 보내왔다. 이분은 평생을 과학자로 살아오신 지성인이며 남성이다. “목사님! 저는 요즈음 예배 때마다 성령님의 운행하심을 강렬하게 느낍니다. 특히 추수감사예배 때에는 완전히 사로잡혀 있었구요, 어제 주일에는 목사님 설교 중에 예수님이 오셔서 제 이마에 입맞추고 꼭 안아주시는 환상을 느꼈습니다. 제가 열살 때 주님을 만났으니까 63년 만에 처음 느낀 체험입니다. 지금도 예수님의 그 인자하신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저의 신앙과 믿음을 견고하게 해 주시는 목사님과 교회에 늘 감사합니다”

     

이 카톡을 받고 내 안에 부러움과 동시에 굳어진 신앙에 대한 회개가 올라왔다. 사실 나는 큰 지식도 없으며 이성적이다. 그래서 이성적으로 이해가 되어야만 동의 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체험의 영역에 대하여 인정하면서도 나 자신은 추구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신앙생활 가운데 성령체험은 물론 쓰러짐, 향기, 경련 등 초월적인 체험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이성을 발동하여 억누르곤 했다. 하나님의 역사 앞에 내가 굳어진 마음으로 억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 하나님의 역사가 제한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회개가 나온다.

     

요즘 주일 예배에 아가서를 나누고 있다. 아가서에는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안 나온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하다. 그 사랑 때문에 술람미여인이 의심에서 일어나 신랑과의 깊은 사랑 속에 들어갔듯이 아가서를 나누는 동안 나 또한 하나님의 사랑이 뼛속까지 체험되었으면 좋겠다.

     

주님! 내게도 입 맞추어 주세요. 당신의 사랑은 이 세상에서 들뜨게 하는 어떤 포도주보다 낫습니다.

     

홍형선 목사

 
 
 

추수감사절을 맞아 아들이 살고 있는 위스콘신에 가기로 했다. 한 주간 휴스턴을 떠나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냥 떠나면 왠지 안될 것 같은 부담감이 밀려왔다. 그것은 널싱홈에 계신 분들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내와 심방했더니 모두가 반기신다. 사실 요즘 김문수 목사님이 심방을 잘해주기에 전처럼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나를 본 순간 속상하다고 꾸중하실 줄 알았는데 모두가 환한 미소에 기쁨으로 맞아주신다.

     

이집트에서 온 딸과 함께 온 가족이 추수감사절을 맞아 아들에게로 향한다. 학교 졸업하고 직장 잡고 모든 걸 혼자 알아서 해내고 있는데 1년이 지나도록 방문하지 못했다. 어떤 직장에 다니고 어떤 아파트를 얻어 사는지 궁금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찾아가지 못했다. 이번에도 방문을 안 하면 두고두고 원망들을 것 같아 우리가 가기로 했다. 사실 아들이 오면 한 사람 비행기 값이면 되는데 세 사람의 항공료가 들고 먹을 것도 우리 집에 훨씬 많은데 우리가 가기로 한 것은 단지 아들에게 원망 듣지 않으려는 생각이었다.

     

이렇듯 나의 움직임은 의무로 시작된다. 의무감으로 널싱홈에 갔고 의무감으로 아들을 찾아갔다. 아들을 향해 가는 동안 비행기 안에서 ‘나는 왜 사랑이 아니라 의무감으로 움직일까?’하며 내 안에 사랑 없음을 탄식했다.

     

세 사람이 움직이다 보니 아들이 사는 Madison까지는 항공료가 비싸 시카고에서 차를 렌트하여 우선 장을 보고 출발했다. 그러다 보니 집을 떠나 거의 12시간 만에 아들에게 도착했다. 반가운 마음에 아들을 힘껏 끌어안으니 나보다도 더 큰 아들의 가슴이 느껴진다. 잘 살아주는 것도 고맙지만 그냥 아들이 사랑스럽다. 아들이라는 존재 자체만으로 사랑이 느껴진다. 의무감으로 시작된 여행이지만 그 속에 가리어져 있던 사랑이 나를 덮는다.

     

하나님도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시지 않을까?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만으로 사랑하지 않을까?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고 하신다. 또 원수 되었을 때, 공중권세 잡은 자를 따랐을 때에, 이쁜 짓이 하나도 없을 때 사랑해서 죽으셨다고 한다. 이 말은 하나님의 사랑은 생명을 건 사랑이라는 것 이다. 하나님 자체가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사랑이 예수 믿는 내 속에도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의무감으로 나아가지만 결국에는 사랑으로 열매를 맺게 하신다는 것이다.

 

목회 연륜이 많아지고 주위에 일과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직책 때문에 해야 하는 일들이 많다. 많은 경우 좋아서도 아니고 사랑해서 하는 것도 아니다.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의무감으로 출발했음에도 내 안에 심긴 하나님의 사랑은 결국 사랑의 열매를 맺게 하신다.

     

은혜다.

     

홍형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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