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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 해는 교회가 제일 성장한 한 해였다. 매주 새 신자가 있었고 대다수가 잘 정착했다. 목회자에게 교회가 성장하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아이러니는 작년 한 해가 내게는 참 어려웠다는 것이다. 교회는 성장하는데 나는 어려웠다. 워싱턴주 타코마의 작고 어려운 교회로 사역지를 옮긴다고 발표했다가 성도님들의 간청으로 철회한 후로 참 어려운 시간을 보내었다. 토네이도와 허리케인 같은 환경적 어려움도 있었지만 표현할 수 없는 내면적 어려움들이 있었다. 그래서 내 생각에는 23년간 휴스턴순복음교회를 섬기면서 제일 어려운 한 해였던 것 같았다. 그러기에 ”순종해서 가기로 했다가 순종으로 남기로 했는데 왜 내게 이런 어려움을 주시냐 “고 하나님께 질문이 있었다.

     

어려움과 질문속에 하나님은 내게 ”교회“라는 답을 주시는 것 같았다. 교회를 아프게 했다는 것이다. 내게 확신도 있었고, 가족도 모두 찬성하여 작은 교회를 섬기겠다며 사임을 이야기 했는데 이것이 주님의 신부인 교회(성도들)를 아프게 했다는 것이다. 주님은 이것이 싫다는 것이다. 사임소식에 아버지가 자식을 버린 것 같고, 남편이 아내를 버린 것 같다며 슬퍼하던 성도님들의 모습이 떠오르며 주님께서 자기가 사랑하는 신부들을 힘들고 아프게 했다고 질책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예수님이 얼마나 교회를 사랑하시는지가 느껴졌다. 그러나 내 속에는 “나는 순종한 것 밖에 없었다“는 항변이 있었다. 솔직히 억울하고 이해가 안되었다.

     

그런데 새벽예배 시에 디모데전서를 묵상하는 가운데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다툼이 일어난다(딤전 6:5)”는 말씀이 나를 터치했다. 이제까지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사람을 종교 장사꾼 정도로 생각했다. 발람선지자처럼 은사를 이용하여 개인의 부와 명예를 취하는 자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나의 순종에 이런 모습이 있었음이 보였다. “나는 너희와 달라, 20년 섬긴 교회도 놓고 작은 교회로 갈 수 있는 사람이야, 나는 이 교회도 성장시킬 수 있어 “라는 내 의가 보였다. 그리고 이런 내 의도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것과 같다는 사실이 느껴졌다. 그래서 나를 순결케 하고 교회도 순결케 하시려고 이런 시간을 주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감사한 것은 성장하며 어려웠다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연약을 배려한 전적인 은혜이다. 40년 광야가운데 의복이 해어지지 않았던 은혜이다.

     

사무엘이 다윗에게 찾아와 강권적으로 기름을 붓고 왕이 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런 다윗에게 다가온 것은 10년 이상 쫓기는 삶이다. 그런데 다윗은 “내가 언제 왕이 되겠다고 했어요. 언제 내게 기름 부어 달라고 했어요”라고 한 번도 항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만 의지한다. 무슨 말인가? 내 의가 없다는 것이다. 아니 내 의가 치밀어 오르기에 더욱 주님만 바라보았다는 것이다. 경건을 이익의 도구로 삼지 않기 위해서는 만인의 모델인 다윗(사 55:5)에게 배워야 한다.

     

홍형선 목사

 
 
 

이번 한 주는 거절해야 하는 일들이 있었다. 어느 집회에서 강사로 초청이 있었고, 또 어느 단체에서 내게 방문을 부탁했지만 거절해야 했다. 부족한 나를 귀하게 여기고 초청한 것도 감사하고, 소개해준 분을 생각하면 순종해야 하지만 거절했다. 기도가운데 교회를 생각하고, 본질을 생각할 때 마음이 불편하여 거절했다. 사실 나는 거절을 잘 못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거절했다.

     

이번 한 주간 내 귀에 들려온 소리는 “자랑스럽지는 못해도 부끄러운 신앙인이 되지 않도록 순결하고 성실하게 살겠다 “는 고백들이었다. 한국의 찬양사역자인 장종택목사님이 내게 영상을 보내주면서 자신의 삶을 이렇게 고백했다. 너무 귀한 고백이라 가슴에 간직하고 있었는데 금요일 새벽 예배에서 말씀을 전해주신 김성태 목사님께서 식사교제 자리에서 똑같은 고백을 한다. 왜 하나님께서 내게 이런 고백을 연이어 듣게 하실까? 그리고 어떻게 사는 것이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것일까? 또 순결하고 성실하게 사는 것은 무엇일까?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이 말들이 내 머릿속에서 맴돈다. 그런데 생명의 삶을 따라 디모데전서를 읽는데 사도바울이 디모데에게 선한 싸움을 싸우라는 권면 중에서 문득 선택이라는 단어가 떠 오른다. 선택은 출발이고 이 출발은 내가 무엇을 가치 있게 여기느냐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선택은 여러 가지 속에서 내가 가장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을 근거로 선택한다. 그리고 이 선택이 내 인생의 발자국을 만든다는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은 선택을 잘한 사람들이다. 모세는 애굽의 부귀보다 하나님의 백성들과 고난 받기를 선택했고, 요셉은 보디발 아내의 유혹 앞에서 청년 때의 순간의 쾌락보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치 않는 것을 선택했고, 룻은 모압의 안정적인 삶보다 여호와를 따르는 길을 선택했다. 이렇듯 성경인물들은 선택을 잘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 선택들이 이들 모두에게 믿음의 사람이라는 칭호를 얻게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선택이 어렵다는 것이다. 갈등이 많을수록 선택이 어렵다는 것이다. 선택이 얼마나 어려운지 노년의 바울은 목회의 길을 시작한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내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경고를 하노니…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딤전 1:18,19)“고 한다. 믿음과 양심을 지키는 선택을 하라는 말이다. 타협하거나 물러서지 않고, 영적 전투를 감당하는 사람이 되어 선택하라는 것이다. 그때 교회가 세워지고 하나님나라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나는 왜 거절을 못할까? 왜 선택 앞에서 갈팡질팡 할까? 가치가 혼탁해서 그렇다. 욕심이 많아서 그렇다. 예수님이 아니라 내가 왕이기 때문이다. 이런 나에게 주님은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라고 하신다. 인생을 살고 난 뒤에 내 발자국이 아름답고 싶다. 믿음의 사람이었다는 말을 듣고 싶다. 오늘 나의 선택이 믿음의 발자국을 만든다는 사실 앞에 선택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주님만이 왕이십니다.

 
 
 

이번 주에 교제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Cross foundation을 섬기는 영미 cross 집사님과 교제했다. 크로스파운데이션은 1년에 한 번 직원들이나 자녀들에게 프로젝트를 만들고 그 프로젝트의 10% 이상을 자신의 재정을 헌신하면 미팅을 거친 후 2만 불까지 나머지 90%를 크로파운데이션에서 충당해 준다고 한다. 그래서 왜 그런 일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다음 세대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그 일에 헌신함을 길러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한마디로 기독교 리더십을 세워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어느 집사님은 아르바이트하는 아들에게 일하는 곳에서 pay만큼만 일하지 말고 pay이상으로 일하되 그 일에 투자하는 마음으로 일하라고 했다고 한다. 어떤 일이든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일이라 여기고 일하라고 했다고 한다. 이 또한 기독교적 청지기 교육이다.

     

수요예배에서 김문수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중 충격을 받았다. 월요일 새벽예배 시에 최근녕목사님께서 말씀 중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인 도마가 인도까지 가서 복음을 전했다고 아는데 사실은 한국까지 와서 복음을 전했다”면서 몇 가지 증거를 이야기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충격은 김문수목사님의 반응이다. 나 같으면 이것이 사실인지부터 확인할 것이다. 그것도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구글이나 챗GPT를 통해 조사할 것이다. 그런데 김문수목사님은 갔냐? 안 갔냐? 보다 “죽으러 갔구나. 한국땅에 복음 때문에 죽으러 갔구나”로 받아 드렸다고 한다. 그리고는 자신에게 적용하기를 하나님께서 나보고 죽으라면 죽고, 잘살게 하면 잘살고, 여기 있으라면 여기 있고… 하겠다고 고백한다. 무서운 신앙고백이다. 나는 여기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신앙의 순수성을 보고 만났다.

     

교회 정문 앞 화단은 제목이 없다. 큰 선인장 두 그루가 있는 화단에 화분이 한 개 두 개 생길 때마다 심기 시작하다 보니 이름 모르는 꽃들과 화초가 어우러져 버렸다. 그래서 작은 정글 같다. 그런데 우리 교회를 방문 중에 계신 어느 예술가분이 멋진 화단이라고 한다. 어이가 없어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했더니 자유함이 있어 좋고, 직사광선을 싫어하는 식물은 좀 더 큰 화초밑에서 자라듯 서로가 어우러져 서로를 보호해 주는 모습이 좋다고 한다. 이런 칭찬을 들으면서 이것이 하나님나라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한 주간 혹은 하루를 통해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신앙의 이야기를 듣고 나누면서 내 안의 하나님 나라가 만들어지고 아름다워지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니 모두가 소중할 뿐이다.

     

홍형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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