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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일기

야곱이 큰소리친다. 라반은 야곱이 자기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자기의 두 딸과 손자들을 데리고 삼 일 전에 도망쳤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가 신으로 여기는 드라빔을 가지고 갔다는 사실을 알고 7일 길을 달려 쫓아간다. 쫓아가면서 야곱을 죽이든지, 아니면 어떤 꼬투리를 잡아 종전같이 자기 종으로 써야겠다는 마음으로 야곱을 쫓아간다. 그래서 야곱을 만나자마자 정신없이 드라빔을 찾는다. 찾으면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다. 그런데 찾을 수 없다. 이 상황을 간파한 야곱은 처음으로 라반에게 큰소리친다.


이 모습을 묵상하며 오늘 하루도 큰소리치며 살겠다고 결심했다. 내가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고 마귀와 상관없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 앞에 큰소리치자고 결심했다. 새벽기도가 끝나자 지역 목사님 한분이 만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이런저런 이야기 도중에 어느새 내 목회경험 이야기를 하고있는 나를 발견했다. 큰소리치자고 하고는 나만 높이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상하게 내 마음이 기쁘지 않다.

그리고 일과 속에서 누적된 피곤함이 나를 무기력하게 한다.

"피곤하다"라는 소리가 무의식적으로 나온다. 큰소리치며 살겠다고 했는데 신음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세상을 향해 큰소리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했다. 그러면서 큰소리친다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그 순간 가을이라는 사실과 교회 입구에 말라진 화분이 덩그러니 있는 것이 보였다. 그래서 점심시간임에도 식사를 뒤로하고 Lowe's에 가서 가을 냄새 가득한 큼직한 국화 화분 두 개를 사서 교회 입구에 놓았다. 큰 화분을 사다 보니 노란색이 아니라 자주색 국화다. 내가 좋아하는 색상이 아님에도 갈등 없이 화분을 들어 카트에 실어 가져왔다. 그런데 자주색도 예쁘다. 국화 위에 물을 듬뿍 주면서 교회에 오시는 성도님들이 가을을 느끼고 그들도 큰소리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국화를 사면서 어제 tee성경공부에서 배웠듯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큰소리치는 삶인 것을 알았다. 그렇다 내가 외쳐야 할 큰소리는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항변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다.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영혼을 위해 죽으셨듯이 영혼을 위해 죽는 것이다. 십자가의 삶이 큰 소리이다.

주님, 제가 욕심 많고 자기중심적이지만 순간순간 하나님을 사랑하듯 영혼을 사랑하게 하소서.

홍형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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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말하는 우주 (은하)라는 공간은 팽창하면서 태양으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은 부모와 자녀들 관계 사이에서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을 해서 자녀를 낳습니다. 그 자녀가 점점 자라게 돼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부모와 더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부모로부터 점점 더 멀어진다는 거예요. 그래서 부모와 자녀와의 간극을 이어주는 것이 ‘추억’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알고부터는 저는 바쁜 중에도 시간을 내어 아들과 좋은 기억을 만들어 가려고 하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루는 아들이 태권도장에서 벨트 테스트가 있다고 해서 가보았습니다. 태권도 품새를 하고 이제 비슷한 또래와 대련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배웠던 발차기를 선보이지만 의욕만 앞서는 아이의 모습과 상대방의 발차기에 맞는 모습을 보면서 아비로써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이런 마음이 들 때 즈음에 제가 어렸을 적 어머님께서 저에게 늘상 하시던 말씀이 기억이 났습니다. ‘돈 (일명: 깽값)은 물어줄 테니, 어디 가서 뺏기지 말고 맞고 다니지 마” 저는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어렸을 적 흘리기도 잘 흘리고, 친구들에게도 가끔 맞고 다녔던 것 같습니다.


한 미식축구 감독이 새로운 선수를 구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스카우터가 감독에게 물었다. “어떤 선수를 원하세요” 태클을 당해 넘어져도 금방 일어나 뛸 수 있는 순발력이 강한 선수인가요?” 감독은 아니라고 했다. “그럼 넘어져도 일어나고 또 넘어져도 일어나는 끈질긴 선수인가요?” 감독은 또 아니라고 했다. “제가 원하는 선수는 상대방 때문에 넘어졌다가 일어나는 선수가 아니라, 상대방을 넘어뜨리는 선수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꼭 넘어져야 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의 조건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도움과 인도하심을 구하되 모든 것이 자신에게 달린 듯 행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막 9:23)

모든 사람이 다 무너질 것 같은 상황에서도 그러지 않는 믿음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문제를 바라보며 낙망하고 넘어질 것을 미리 염려하는 자들이 아니라, 천국의 소망으로 눈을 드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의 손을 붙으십시오. 똑같은 상황에서도 우리는 승리의 삶을 살게 될줄 믿습니다.


이권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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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일기. 9월 22일

나이가 먹어 가면서 아버지가 작아 보였다. 매일 술 드시고 엄마와 싸우는 모습도 싫었고 무능력도 싫었다. 그래서 친구들과 길가다 아버지를 만나면 아버지가 부끄러워 외면하려 했다. 그런데 내 나이 50이 넘으면서 내게서 그토록 싫어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보인다. 술 취하듯 드러난 실수는 없어도 내행동과 언어에서 아버지가 발견될 때면 섬칫하듯 놀란다. 아버지와 반대의 길을 가고자 해서 술도 안 먹고 열심히 살고자 했는데... 내 의도와 달리 내가 싫어하던 아버지 모습이 내게서 보인다.


요즘 큐티 말씀을 보면 이삭의 실수가 나온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했던 실수 복사판이다. 그 아버지의 그 아들 아니랄까 봐 똑같이 실수한다. 이삭의 실수에서 나도 아버지처럼 자식들에게 자기 즐거움만 아는 아버지로, 무능력한 아버지로 비쳐질까? 두렵다. 아들이 언젠가 웃자고 한 이야기지만 "아빠 나 고2 때 무슨 고민이 있었는지 알아?"라고 물었을 때, 딸아이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겨주지 않아도 되니 짐만 되지 말라"라고 할 때 이 말이 날카롭게 들렸던 것이 아버지에 대한 나의 상처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이삭이 그 실수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방법은 아버지가 팠던 우물을 다시 파면 서다. 다툼에 분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팠던 우물을 다시파자 샘물이 터지면서 서서히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브엘세바에 다다른다.


사람들이 나를 볼 때면 편안하고 배려가 많다고 한다. 이런 인상이 목회에 큰 도움이 된다. 아버지가 팠던 우물을 다시 팠던 이삭을 묵상하면서 나의 이런 성품이 아버지 영향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버지는 주위에 원수진 사람이 없었다. 항상 다른 사람을 배려하셨다. 그런데 나는 이 모습이 좋은게 좋은 것처럼 보여 싫었다. 무능력처럼 보여 싫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이 귀한 성품에 대해 관심 없이 아버지와 반대되는 삶으로만 살고자 했다. 그래서 경쟁에서 이기려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그토록 싫어하던 아버지의 성품이 내게 유전되어 목양에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을 이삭이 아버지가 팠던 우물을 다시 파는 모습에서 알게 되었다. 당연한 줄 알았던 성품이 아버지가 내게 주신 유산인 것이다. 하나님은 아버지를 통해 영적 유산을 주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오늘 나로 힘을 더해 주고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몇 개월 전 살아생전 뵌다며 어느 가을날에 한국을 방문했다. 3년간 암과 싸우느라 뼈만 남은 아버지께서 동터오자 검은장화를 신고 바가지 하나를 가지고 어디론가 가셨다. 그리고는 얼마 뒤 알밤 가득한 바가지를 엄마에게 내밀며 "형선이가 밤 좋아하니 밤 넣고 밥해 주라 신다" 오늘은 유난히도 삭정이 같은 다리로 그 무거운 장화를 신고 걸으시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생각난다. 그래서 엄마에게 전화해 "고맙다"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엄마는 "내가 고맙지.. 전화해 주어 고맙다"하신다.


주님. 내게 좋은 부모님을 주신 것과 제가 부모인 것이 감사합니다.

홍형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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