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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 주간 “허용”이라는 단어를 묵상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을 향해 가던 중 요단 동편 길르앗 산지의 푸르름과 풍요를 보았다. 그리고 이 풍요로움에 매료된 르우벤지파, 갓지파와 므낫세 반지파가 이 땅을 기업으로 달라고 간청한다. 분명 하나님은 가나안의 경계를 북쪽으로는 호르산이고, 남쪽으로는 신광야이고, 서쪽은 대해이고, 동쪽으로는 염해라고 규정해 주었음에도 약속의 땅이 아닌 길르앗산지를 달라고 떼를 쓴다. 그리고 이 간청함에 하나님은 허용하신다. 이외에도 하나님은 왕을 달라는 이스라엘 민족의 간청과, 발람선지자의 간청에도 허용하신다. 이렇듯 성경에는 하나님의 뜻과 어긋나도 간청하면 허용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그런데 내 삶에도 허용하심으로 다가온 것이 많다(가정, 이민, 목회..). 나는 기도응답이라고 하지만 엄밀히 말해 하나님의 허용하심인 것이 많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허용하심이 축복인가? 허용하심으로 요단동편 길르앗산지에 정착한 두 지파 반은 계속된 아람나라와 암몬의 침공으로 고생고생하다가 결국 앗수르의 침략으로 역사 속에서 사라진다. 왕을 요구한 이스라엘도 응답으로 허락된 왕 때문에 고생 고생만 하다가 나라는 멸망하고 포로로 잡혀간다. 그렇다면 허용하심이 진정한 응답이 되고 축복이 되려면 어떡해야 하는가?

     

교회 연못이 지저분하다. 온갖 쓰레기가 갈대 사이에 쌓여있고, 갈대는 뻗을 대로 뻗어 연못의 1/3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 교회의 자랑스러운 연못이 흉하게 보인다. 그래서 청소하기로 마음먹고 해가 진후 낚시옷을 입고 갈대를 벨 낫을 들고 연못으로 갔다. 내 가슴까지 차오르는 물과 진흙뻘을 헤집고 다니며 쓰레기(축구공 3개, 야구공, 고무공, 물병, 컵 등)를 줍는데 큰 쓰레기 봉지 가득이다. 2미터 이상 자란 갈대들은 왜 이리도 무거운지 온몸에서 땀이 흐른다. 거기에다 낚시옷 어딘가가 찢어졌는지 비린내 나는 물들이 스며들더니 몸이 무거워진다.

     

사실 그 누구도 나에게 연못청소를 하라고 한 사람이 없다. 연못청소가 영혼구원이나 교회성장을 가져오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자연미가 있고, 깨끗한 분수가 있는 교회 연못을 자랑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 또한 큰 틀에서 “허용”이다.

     

의욕 있게 달려들었지만 깊은 진흙 뻘 속에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옮기다 보니 힘이 들었다. 힘이 드니 짜증이 난다. 처음에는 누군가가 봐주었으면 하는 공로자의 의식이 있었는데, 힘이 드니 ”꼭 내가 해야 하나“ 라는 생각 속에 여러 얼굴들이 떠오르며 비교의식이 지배한다. 그 순간 어떻게 하면 허용이 축복이 될 수 있을까? 허용하심 속에 공로자 의식과 비교의식 속에 빠지지 않고 축복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속에 “주님! 당신이 사랑하는 신부들이 깨끗한 연못을 보고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주님! 저에게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해요”라며 의지적으로 하나님께 시선을 두려고 했다. 그런데 놀랍다 내 안에서 기쁨이 흐르더니 기쁨이 나를 감싼다. 그리고 진흙뻘속에 뒹구는 나 자신이 대견스럽다.

     

허용하심이 축복이 되려면 축복으로 다가온 것에 시선을 두는 것이 아니라 허용하신 하나님께 시선을 두어야 함을 배우는 순간이었다. 예수님은 나를 시궁내 나는 진흙뻘에서 공로자의식과 비교의식으로 뒹굴게 놓아두지 않고 허용하심의 축복을 맛보게 하신 것이다. 주님! 감사해요.

     

     

홍형선 목사

 
 
 

어린 시절 가을날에는 먹을 것이 참 많았다. 학교에서 오는 길에 감나무 밑에 가면 나무에서 떨어진 빨간 홍시가 있었고, 밤나무 밑에 가면 알밤들이 있었다. 길가 옆 무밭에서 팔뚝만한 무 하나를 뽑아 손톱으로 껍질을 돌려 벗긴 후 한입 베어 먹으면 매콤함 속에 흐르는 단맛은 갈증 해결을 넘어 주린 배를 채워 주곤 했다. 이렇듯 가을은 풍성하다.

     

오늘 큐티 말씀에 보면 장막절을 지키라고 한다. 장막절은 유대력으로 7월이지만 우리 달력으로는 10월로 가을걷이가 다 끝난 후 안식하는 절기이다. 가을 내내 땀을 흘리며 수확한 모든 곡식을 창고에 들인 후 넉넉한 마음으로 감사하는 절기이다. 그런데 장막절을 지키는 방법이 독특하다. 장막절이 되면 아버지는 가족들을 데리고 들로 나가서 하늘이 보이는 초막을 짓고 그곳에 살면서 조상들의 광야 생활을 기억하는 것이다. 따뜻하고 푹신한 침대가 아니라 돌이 찌르는 땅바닥에서 자고 씻을 수 없는 초막에서 살면서 40년 동안 광야에서 공급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초막에서 일주일을 보내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가장 풍요로울 때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기억하며, 몸으로 느끼고 체험하기 위해 초막에서 보내라는 것이다. 지난 금요예배를 섬겨주신 연광규 목사님께서 이런 말을 하신다. 연목사님은 탈북자로 먹고살기 위해 중국에 나왔다가 복음을 듣고 하나님을 만난 후 북한에 다시 들어가 복음을 전하다 공산당에 잡혀서 모진 고문 끝에 감옥에 갔다 오신 분이다. 이런 목사님께서 ”신앙의 적은 핍박도 아니고, 감옥도 아니고, 풍요라고 하신다" 무슨 말인가? 북한에서 고문받고 있을 때보다도 풍요로운 한국과 미국에서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며 살기가 더 어렵다는 말이다.

     

요즘 내 인생은 가을인 것 같다. 모든 것이 풍요로운 가을인 것 같다. 예전과 다르다. 주일을 두 번 비우고 한국에 다녀왔는데도 교역자님들과 교회 리더십들이 교회를 잘 이끌고 계셨다. 내가 심방 하지 않고, 더이상 청소하지 않아도 교회가 잘 돌아간다. 목회 가운데 이런 시간들이 올까 했는데 풍성한 가을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풍요로운 계절에 장막절을 지키라고 하신다. 들로, 광야로 나가서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기억하며 초심으로 돌아가라고 하신다. 광야로 가서 초막을 짓고, 제물을 드리라는 것은 하나님이 실제가 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초막은 어디에 짓고 어떻게 초막절을 지켜야 할까? 어디에 초막을 지어야 하나님이  실제가 되고 진정한 기쁨과 감사가 있을까? 나에게 광야로 느껴져 은근슬쩍 넘어서 피해 가고 싶은 곳이 어딜까?

     

금요예배이다. 22년 이상 금요예배를 드리지만 매번 영적부담을 느낀다. 그래서 가능하면 안 드리고 싶다. 그런데 풍요 속에 초막으로 갈 때 하나님이 실제가 된다고 한다. 금요예배에 하나님이 실제로 임재하길 소원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초막으로 가야겠다.

     

홍형선 목사

 
 
 

인천에서 10시간 이상 날아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점심 겸 저녁으로 

가락국수 한 그릇과 물 한 병을 집어 드니 $25이다. 한국에서 만원이면

충분할 텐데… 두 배가 넘는다. 내가 미국에 돌아왔음이 확실하게 느껴진다. 이러면 안 되는데 돈으로 느껴진다.

     

두 달 전 엄마가 며칠째 음식을 못 드시고 위독하다고 하신다. 의사 선생님도 준비하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 가슴 조이며 한국에 갔는데 엄마가 환히 웃으시며 우리 부부를 반겨 주신다. 나를 향해 환히 웃으시며 100점짜리 아들이란다. 고생하는 형이 옆에 있는데도 100점짜리 아들이라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대화 속에 나에게 100점짜리 아들이라고 말한 속내가 보인다. “내가 치매가 있는 것도 아니고 밥도 잘 먹고 배변도 정기적으로 하는데 집에 가고 싶다”라고 하신다. 형에게 그렇게 말해도 꿈쩍이지 않으니까 둘째인 나에게 부탁하려고 100점짜리 아들이라고 하신 것이다. 돌아가실 수도 있다는 말에 여행짐을 챙기며 일부러 검은색 양복을 선택해 가지고 갔는데 환하게 웃으시며 이렇게 응석도 부리시니 감사하면서도 귀여우시다. 농사를 지으실 때는 그리도 거칠던 엄마의 손이 3년째 누워 계시다 보니 손가락은 여전히 틀어져 있어도 매끄럽고 고우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고운 엄마 손을 붙잡고 쓰다듬으며 기도하는 것뿐이다.

     

어머니 병문안과 함께 한국방문 중 또 하나의 계획이 있었다. 그것은 얼마 전 한국으로 이주한 채삼선 권사님을 방문하여 권사님의 어머니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이것이 채 권사님께서 25년간 사시던 휴스턴을 떠나 한국에 가신 목적이다. 그래서 천안에 사시는 서승현장로님 부부를 만나 함께 채 권사님이 정착한 구미로 갔다. 항상 웃으시던 그 웃음 그대로 환히 웃으시며 우리를 반기신다. 그러면서 “엄마가 예수님을 영접했어요”하며 기뻐하신다. 그동안 기회가 될 때마다 예수님을 소개하면 “네가 가는 길과 내가 가는 길은 다르다”면서 강하게 거부했는데, 지난주에 “네가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구나”하시면서 순수히 예수님을 영접했다면서 영접기도 하시는 영상을 보여 주셨다. 어머니가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사실에 감사하면서 권사님의 어머니가 계신 효학교(노인학교)를 찾아가 뵈었다. 93세의 연세에도 깔끔한 맵시로 우리를 맞이하면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신다. 그러면서 채 권사님이 적어준 영접기도문을 매일 두 번씩 읽는다고 고백하시면서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신다고 하신다. 그리고 목사인 내가 방문했다고 하니 채권사님의 어머니를 돌보시는 선생님께서 자신이 교회 권사님이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매주 효학교 안에 예배가 있는데 권사님의 어머니를 매주 예배자리로 인도하겠다고 약속하신다. 이 또한 얼마나 감사한지… 채권사님의 기도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서영자 집사님께서 처녀 때 복음을 듣고 신앙생활을 시작한 교회에 서장로님 부부가 한국에 정착하면서 방문하신 이야기를 해 주신다. 교회에 가보니 자녀가 3명 있는 젊은 목사님께서 20여명의 교인들과 힘겹게 목회하는 모습에 목사님의 둘째 자녀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매월 장학금을 주기로 약속했다는 말씀을 하신다. 장로님의 아드님이 선교사이다. 아드님의 선교를 후원하기 위해 장로님은 생활비가 덜 드는 한국으로 가셨다. 그러기에 모른 척할 수 있는데 주신 감동에 순종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 성도님들이 자랑스럽다. 그리고 이런 성도님들의 신앙이야기가 나의 한국방문에 의미를 주고 있다. 다시 한번 목사도 교회를 통하여, 성도를 통하여 위로받고 힘을 얻게 됨을 배우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마음 편하게 여행을 떠나도록 기도해주고 배려해 주는 성도님들이 고맙다. 나는 행복한 목회자이다

     

홍형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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