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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4일(수)의 영성일기를 나누어요.


터키와 휴스턴은 7시간 시차가 있다. 정확히 말해 터키가 7시간 빠르다. 소아시아 탐사를 다녀온지 4일이 되었는데도 오후 시간이 되면 힘이 빠지면서 집중력이 흐려지다가 초저녁부터 잠이온다. 반면에 잠을 더 자고 싶은데 새벽 1시 2시면 저절로 눈이 떠진다. 나는 지금 휴스턴에 있는데 몸은 습관을 따라 터키 시간대로 반응하는 것이다. 그리고 눈떠진 새벽이 괴롭다. 휴스턴에 있으면서도 터키 시간으로 사는것이 힘들다.


오늘 큐티 말씀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땅을 정복해 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베냐민 지파가 정복할 땅이 예루살렘인데 이땅에 여부스 민족이 살고 있었고 베냐민 지파가 이들을 쫒아내지 못하여 지금까지 같이 살고 있다고 말씀한다(삿1:21). 그리고 시간이 흘러 베냐민 지파 출신의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어도 여부스 민족이 예루살렘에 살도록 그냥 놓아둔다. 하지만 다윗은 사울을 이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음 받은 후 제일 먼저 한 일이 여부스 민족이 살고 있던 시온성(예루살렘)을 정복한 후 기럇여아림에 있던 언약궤를 그곳에 가져오고 이곳을 예배 중심지로 삼는다. 베냐민 지파와 사울왕은 마땅히 여부스 민족을 정복해야 함에도 무슨 연유인지 여부스인들과 함께 살았다. 그러나 다윗은 왕이 되자마자 쫒아내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왕 삼은 것을 후회한 사울왕과 내마음에 합한 자라고 기뻐하신 다윗왕의 차이다.


오늘 새벽에 김인희 목사님께서 일전에 주일 설교를 섬겨주신 최누가 선교사님 말씀을 인용하여 이리 가운데 보내어진 양 이야기를 하셨다. 이리 가운데 보내어진 양이 이리 흉내를 내어 이리 가죽을 쓰고 발톱 붙이고 이리 이빨처럼 틀니를 끼고는 이리로 가득찬 세상을 변화 못시킨다. 양으로서 살 때, 양의 삶을 살 때만 변화시킬수 있다고 한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내 삶에서 쫒아낼 여부스 민족과 양의 삶을 생각해 보았다. 지금이 VBS 기간이라 그런지 자연스럽게 다음세대가 생각이 났다. 다음세대를 슬로건으로 외치는 것은 멋지지만 실제로는 여부스 민족이 살고 있는 시온성처럼 외면하고 싶다. 다음세대 사역은 표도 안나고 되어진듯하다 어느날 보면 원점이고... 쉽지않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것이 우리의 시온성이고 양같이 사는 길이라고 한다.


하루일과와 새벽이 괴롭지 않으려면 몸이 빨리 휴스턴 시간으로 바뀌어야 하듯 교회가 세상의 방법 때문에 괴롭지 않고 비상하려면 다음세대의 부흥을 계속 꿈꾸면서 움직여야 한다. 이 마음으로 아이들이 예배드릴 공간을 vacuum하고 VBS를 위해 수고하는 staff와 교회 비전에 관심을 갖고 간식과 이모양 저모양으로 헌신하는 분들을 위해 기도해 본다.


우리는 순종하고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홍형선 목사 드림


 
 
 

오늘로 12일간의 터키 내 소아시아 7 교회와 사도바울의 선교여행 경로 탐사를 마쳤습니다. 이 긴 여행에 동행하며 위로가 되어주신 김승철 선교위원장님 부부께 감사합니다.


이번 여행 가운데 배운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공동체입니다.

모든 곳이 최소 2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땅이지만 오래전 있었던 지진으로 지금 이곳은 돌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서머나나 골로새 같은 경우는 흔적도 없습니다. 그래서 유적이나 유물을 기대하고 방문한 저에게는 시간과 경비가 아까울 정도로 실망스러움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서머나교회가 있었다는 이즈밀 시의 한적한 공동묘지에서 2007년 말라티아에서 순교하신 세 분 중 한 분 네자티 선교사님의 묘소를 방문했을 때 가이드 선교사님께서 ‘이들이 죽음 앞에서 가장 힘든 것은 장기가 꺼내져 잘려지고 입과 항문이 칼에 수십 차례 찔리는 고통보다 사랑하는 동료가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고통이었다’라는 말씀에서 ‘이들이 이런 고통 속에서도 배반하지 않고 믿음을 지킬 수 있는 이유는 함께 믿음을 지키는 형제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고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하나님은 이 화려한 고대 도시와 유물은 깊은 땅속에 감추었나 봅니다.


둘째는 다음 세대입니다.

갑바도기아는 이곳은 수천 년 전에 있었던 화산 폭발로 온 땅이 화산재로 덮여있습니다. 그래서 파기가 쉽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화산재는 공기와 닿으면 딱딱하게 굳어져서 이곳에는 많은 동굴이 있다고 합니다. 스머프 만화에서 본듯한 큰 바위 밑 동굴들은 기독교가 세력화된 후 순수한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수도원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파 놓은 동굴이라면 또 하나의 동굴은 지하동굴입니다. 이 지하동굴은 120m까지 파 내려갔고 20층 높이로 최대 3만 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안전상 8층까지 전체의 10%만 개방). 이 지하 동굴은 2세기 초부터 기독교가 국교화되기 전까지 약 250년간의 극심한 핍박을 피해 기독교인들이 피난처로 사용한 동굴인데 평상시에는 밖에서 살다가 위협이 느껴지면 동굴 속으로 숨어들어 살았다고 합니다. 이곳을 방문하며 처음 갖은 생각은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시인하고 순교하지 구차하게 피신하여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동굴 중 2층 가장 좋은 곳에 위치한 성경학교를 방문하면서 이들이 왜 이곳에 숨어들어 평생을 햇빛을 보지 못한 삶을 살았는지가 이해되었습니다. 다음 세대.. 신앙이 다음 세대로 그래서 주님의 다시 오실 때까지 복음이 전파되길 원하는 믿음이 이들을 동굴교회로 이끌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복음은 2000년을 지나 저에게로도 온 것임을…


여행을 마치며 갖는 제 마음은 이 은혜의 땅에 성도님들과 다시 방문하여 복음과 교회를 배우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감사한 것은 제 아내가 13년 전에 선교비전을 받으면서 이고니온(코냐)에 가고 싶어 했는데 13년 만에 함께 방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저희 부부에게 영적으로 풍성한 은혜를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주님께 그리고 교회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순종하고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홍형선 목사 드림


 
 
 

요즘 들어, 다시 큐티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매일 아침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합니다. 예전에 청년부와 매일 아침 큐티를 하면서 묵상한 내용을 글로 적어 함께 나누었는데, 이제는 함장님들과 매일 아침 나누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묵상한 내용을 저의 머릿속에만 간직했는데, 문제는 오후만 되면 내가 어떠한 묵상을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다잡고 묵상한 내용을 깊이 생각하고 정리해서 글로 써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생각만큼 안 되었습니다. 마치 아무런 목적 없이 산을? 오르는 느낌이었습니다. 아직도 불편하고 어렵고 부끄럽기도 합니다. 그러나 계속해 보려고 합니다. 언젠가는 저와 함께 등반?을 할 영적인 벗들이 많아지기를 소망하면서요.


어제 토요일 큐티 본문 (시편 16:1~11절)을 가지고 묵상한 내용을 성도님들과 나눕니다.


오늘 큐티 본문은 시편 16:1~11절로 오직 주님만이 자신의 유업이고, 기쁨이고 즐거움이라고 시편 기자는 고백합니다.

개인적으로 6절 “내게 주신 땅은 아름다운 곳에 있으니 내가 정말 좋은 곳을 내 몫으로 받았습니다”를 묵상하면서, 소유와 만족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인간 모두에게 있어서, 무언가를 소유하고 싶어하는 욕망은 인간 특유의 본성일 뿐만 아니라 자기 정체성 확립을 위해 필요한 본능이라고 합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사람의 자아는 그가 자신의 소유하고 말할 수 있는 모든 것들, 가령 몸이나 영혼뿐만 아니라 옷, 집, 아내와 자식들, 조상과 친구, 명성, 직업, 은행 예금 따위를 모두 합친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우리가 소유한 것이 우리가 누구인가를 설명해 준다는 것이에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소유를 통해 자아를 만들어간다는 것이죠. 그래서 사람들은 늘 무언가를 소유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소유를 통해 자신을 증명하려고 합니다. “내가 누군 줄 알어? 내가 이런 사람이야!!!” 라고 하면서요. 심지어 신앙생활 가운데 믿음을 소유의 개념으로 생각해 자신을 “믿음이 좋은 사람”으로 증명하려고도 합니다. 마치 과한? 악세사리를 몸에 걸쳐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것처럼, 믿음을 그런 식으로 이용한다는 것이에요.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다 소유하고 가진다 한들 온전한 만족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삶 가운데 10년 전, 5년 전, 1년 전보다는 분명히 무언가 많아지고 풍성해졌는데, 만족하시고 계신가요? 조금만 생각해 보면, 소유가 곧 만족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줄로 재어 좋은 땅을 정해 주신 그 유업이 좋다고 고백합니다. 창조주가 자신에게 정해 준 삶의 영역이 있기에 만족한다는 것이에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분의 완전한 지혜로 허락하신 삶의 영역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삶의 영역 안에서 나는 자족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여러분, 하나님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참 만족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소유를 통해 만족을 경험한다는 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그 삶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시고, 정직한 청지기가 되시길 소망합니다. 나의 최선으로 최고의 하나님을 섬길 때 하늘의 기쁨과 만족을 경험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이권율 목사의 7월 24일 큐티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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