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일기
아내가 수단난민학교 설립을 돕기 위해 이집트로 떠난 후 많이 듣는 이야기가 식사는 어떻게 하느냐? 는 질문이다. 그때마다 나는 자신 있게 잘 먹는다고 대답한다. 사실 식사 문제로는 아내의 빈자리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나는 음식도 잘 만들고 혼밥도 잘한다. 또 성도님들의 식당만 방문해도 한주는 버틸정도로 주위에 갈 곳도 많다.
오늘 아내가 자리를 비운 후 처음으로 혼자서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다가 문득 어느 분이 주신 오이소배기가 생각나서 병채 테이블에 놓고 오이를 꺼내어 먹었다. 오이소배기는 언제 먹어도 상큼하고 맛있다.
식사가 끝난 후 김치병을 냉장고에 넣으려 보니 김치병 주위에 김치 국물이 묻어 있다. 그래서 싱크대에서 닦으려고 집어 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 손에서 김치병이 미끄러져 벗어나더니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졌다. 다행히 플라스틱 병이라 깨어지지는 않았지만 병 속에 있던 오이소배가 바닥으로 다 쏟아졌다. 그러면서 벽과 가구에도 김치 국물이 튀었다. '아~'라고 소리쳤지만 쏟아진 김치를 보면서 몇 초간 멍한 채로 있다가 페이퍼 타올로 닦기 시작했다.
그런데 닦을 때마다 잘게 썰어진 부추가 으깨어져 밀리는 느낌이 정말 싫었다. 이렇게 쏟아진 김치를 수습하는데 문득 왜 나는 누군가의 질문에 "먹는 것은 문제가 안된다"라고 말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요리하기 싫어하는 아내에 대한 불평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며 괜히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나 혼자이니 누굴 탓할 수도 없어 그저 헛웃음만 나왔다.
오늘 큐티 말씀에 보면 노아의 순종이 나온다. 방주를 지으라는 말씀에 주신 규격대로 짓고, 방주에 들어가라니 들어가고, 물이 빠지고 땅이 드러났음에도 하나님이 나오라고 하시기 전까지는 나오지 않다가 나오라고 하시자 그때 나오는 노아의 순종이 나온다. 그래서 나도 순종하며 살자고 하루를 출발했는데 김치병을 떨어뜨렸다.
순종이 무엇일까? 무조건 나를 죽이고 따르는 것일까?
이권율 목사님께서 본문 말씀을 묵상하면서 폴 트립 목사님의 말을 인용해 “믿음이란 하나님이 정해 주신 경계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정의해 주었다. 그렇다 믿음도 순종도 "하나님이 정해주신 경계 안에서 살며 감사하는 것"이다.
또 성경은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시16:6)라고 말씀하셨다.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은 나를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줄로 재어주신 것이다. 특별히 아내는 하나님께서 내게 정확하게 줄로 재어준 선물이다. 그런데 내속에 작은 불평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아내에 대한 불평을 넘어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었다.
순종은 하나님이 주신 경계에 감사하는 것이라는 사실이 쏟아진 김치병 앞에서 절실히 느껴진다.
벌써 아내가 보고 싶으면 안 되는데... 보고 싶다.
홍형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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