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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23 목양실에서 (Word's Form the Pastor)

휴스턴이 뜨겁다. 그러기에 검게 밀려와 쏟아붓는 소나기가 반갑다. 시원하게 쏟아붓는 소나기에 감사하다가 걱정이 앞선다. “교육관에 물이 새면 어쩌지..” 그러기에 무더위를 식혀주는 시원한 빗줄기 앞에서도 감사는커녕 즐기지도 못한다. 이것이 지금의 내 감정이다.

꽤 오래전부터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라 꼭 집어 말할 수 없는데 교회적으로나 내 개인적으로 무엇인가 막힌 것 같다.

오래전 매사에 너무 예민하여 하나님께 이 예민함을 거두어 달라고 투정한 적 있다. 젊어서는 예민함이 목회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았지만 중년이 지나면서 예민함에 반응하다 보니 가벼워진 것 같고, 하나님과의 교제에 장애가 되는 것 같아 거두어 달라고 했다. 그런데 솔직히 요즘은 이 예민함이 그립다. 무엇인가 해결해야 할 것 같은데 알듯 모를 듯하여 가만히 있으려니 답답한 마음에 예민함을 그리워해 본다.

아침에 어느 권사님이 ”비젼집회도 짧고, VBS도 한 주간만 하고 올해는 모든 것이 짧다“고 한다. 권사님의 의도가 좋다는 것인지.. 아쉽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권사님 말에 갑자기 20여년전이 생각났다. 그때도 답답했다. 아니 죽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아침으로 저녁으로 성전에 꿇어 엎드려 부르짖었다. 그래야만 숨도 쉬고 살 수 있을 것 같아 부르짖었다. 부르짖다 보면 통곡도 나왔다. 아내는 그때 부르짖다가 성대결절이 와서 평생 허스키한 목소리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힘들고 답답해서 부르짖었는데 어느 날 보니 내가 답답한 눈물 골짜기에서 나와 있었다.

”답답해요“ 했더니 주님은 20년전의 일을 생각나게 하신다. 무슨 말인가?

지금도 부르짖을 때라는 것이다. 지금도 “주님 없이는 못 산다”고 부르짖을 때라는 것이다.

그래서 교역자들에게 다음 한 주간 부르짖자고 부탁했다. 나와 권구 목사님은 새벽예배시와 저녁에 두차례 부르짖을 테니 다른 사람들은 아침이든 저녁이든 1시간만 부르짖어 달라고 부탁했다. 부르짖다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 골짜기에서 나왔듯이 다른 교역자들도 그 맛을 알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부르짖자고 했다.

요즘 우리교회 큐티 말씀 본문이 사도행전이다. 부르짖을 때 성령세례가 있었고, 부르짖을 때 기적이 있었고, 부르짖을 때 핍박도 이겼다. 그러니까 사도행전의 키워드는 “부르짖음”이다.

초대교회는 답답하다고, burn out 되었다고 탄식만 하지 않고 부르짖은 것이다. 말만 사도행전 29장을 쓰자고 하지 말고 먼저 부르짖어야겠다.

다시 부르짖다가 목이 쉬어 봐야겠다.

결심만 했는데 다음 한 주간이 기대가 된다.

홍형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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