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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복음 교회

7.10.22 목양실에서 (Word's From the Pastor)

요근래 저희 가정에 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한국에 계시는 부모님께서 8년 전 어머님의

고향인 전라북도 고창으로 귀농을 하셨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구간을 의미 있고 아름답게 지나가기 위해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내려가셨습니다. 예산이 턱없이 부족했던 터라 아버지는 집을 짓기 위해 비닐하우스에서 숙식을 해결하시면서 집을 지어주시는 분들과 함께 지내셨습니다.

가수 남진씨의 ‘님과 함께’라는 곡에 나오는,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은 아니었지만 두 분의 마지막 인생 챕터를 아름답게 장식할 수 있는 곳이 마련되었습니다. 몇 해 전에는 마을에서 가장 젊은? 이장으로 선출이 되셔서 마을 어르신들을 잘 섬겨드리고 나누면서 삶의 소소한 재미도 경험하셨습니다.

그런데 3개월 전, 아버지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새롭게 선출된 마을 이장님이 자신의 땅이라고 하면서 부모님 집으로 들어오는 길을 돌로 막아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다루었던 내용이 지금 저희 가정에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제 마음을 더 아프게 한 건 아버지의 눈물이었습니다. 이장님을 찾아가 인간적으로 이 어려움을 원만하게 풀어가려고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저희 집 뒤에 있는 밭을 가지고도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대답뿐이었습니다. 결국 저희 부모님께서는 이 일로 인해 한동안 우울증 약을 복용하게 되셨습니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저는 한참을 울었습니다. 아들로서 부모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어주질 못한다는 서러움과 함께, 하나님을 원망하는 눈물이었습니다. 미국에 유학생으로 와서 공부 잘 마쳤으면 한국에 돌아가서 돈이나 벌면 좋았을 것을,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목회자가 되어서 왜 이런 어려움을 겪게 하실까...라는 작은 신음의 소리였습니다. 새벽예배와 금요 기도예배에서 정말 한없이 울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성도님들은 제가 울면서 기도하니까, 저의 영성이 굉장히 좋아졌다고 이야기하는 분도 계셨습니다. 요근래 저는 기도할 때마다 아들을 달라고 울면서 기도했던 한나와 같이 울었던 것 같습니다. 아직도 상황은 현재 진행형(판사가 땅의 감정가를 매기라는 법정 명령만 받은 상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고난과 고통을 통해 저희 가정과 부모님에게 아름다운 고백을 하게 하셨습니다. “고난이 축복이다!”라는 신앙고백입니다.

저희 어머니는 주님께서 밭일로 인해 기도하지 못했던 시간까지 쳐서 기도하게 하신다고 하면서 매일 저녁 교회에서 철야기도를 하시며 주무십니다. 아버지는 이 어려움을 통해 우리 가정이 믿음으로 더욱더 단단히 세워지게 되었고 더 큰 축복을 허락하시기 위해 주님께서 준비시키시고 계신다는 기대에 부푸셨습니다. 저와 제 아내는 영적인 매너리즘에서 빠져나와 기도의 자리를 지키게 되었고, '우리 하나님은 참 수가 많으신 분이시다.'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부모님을 위해 기도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계속 기도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참 별 볼일 있는 인생입니다.

이권율 목사 Lately, our family has been having a lot of trouble.

My parents in Korea moved to my mother's hometown, Gochang, Jeollabuk-do 8 years ago. It was difficult to pass the last section of life meaningfully and beautifully, but they moved. Since the budget was so tight, my father spent time with the people who built the house while providing room and board in a plastic house to build the house.

It wasn't a picturesque house on that green meadow in the song 'With You' by singer Nam Jin, but a place has been prepared to beautifully decorate the last chapter for the two of them. How many years ago were you the youngest in town? After being elected as the head of the department, he served and shared with the village elders and experienced the small pleasures of life.

But three months ago, I got a phone call from my father. It is said that the newly elected village headman said that it was his land and that the entrance to my parents' house was blocked with stones. What we discussed in ‘I want to know’ is now happening in our family. It was my father's tears that broke my heart even more. I went to see Mr. Lee and tried to solve this problem in a humane way, but to no avail. Rather, it was just an absurd reply that they would claim damages even with the field behind our house. Eventually, this caused my parents to take antidepressants for a while.

Hearing my father's story, I cried for a long time. As a son, it was sad that I couldn't be of any help to his parents, and it was tears of blaming God. It was the sound of a small moan, saying, “If I came to the US as an international student and finished my studies well, it would have been better to go back to Korea and earn money. It seems that I cried endlessly during the morning worship service and Friday prayer service. Some members said that my spirituality improved greatly because I prayed while crying. Lately, whenever I prayed, I think I cried like Hannah, who prayed for a son. The situation is still on-going (the judge has only received a court order to give the land an appraised value). However, God allowed us to make a beautiful confession to our family and parents through these hardships and sufferings. It is a confession of faith, “Suffering is a blessing!”

She sleeps all night in church every evening while my mother says the Lord makes her pray even to times she couldn't pray because of her field work. Through this hardship, our family was built stronger in faith, and he was filled with anticipation that the Lord was preparing us to grant more blessings. My wife and I got out of spiritual mannerism and kept the place of prayer, and we experienced that 'Our God is a man of great mercy.' Thank you to those who prayed for our parents. And I ask you to keep praying.

It's a really fun life.

Pastor Kwon-Yul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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