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일기
페이스북이 해킹당했다. 지난 부활절 예배 후 지난 20년이 감사하여 사진 몇 장을 올린 후 Youth Kosta 포스터까지 올리면서 1년 만에 페이스북을 시작했다. 그러자 많은 분들의 응원 댓글 속에서 잘 모르는 몇 분들이 댓글을 달면서 친구 신청을 해왔다.
어제 어느 분이 나의 페북이 해킹당한 것 같다는 문자를 해주어 들어가 보니 민망한 영상이 올라와 있었다. 민망한 영상을 지우면서 나의 이미지를 흐트러뜨린 것 같아 화가 나고 부끄러웠다. 그래서 아내에게 이 상황을 말했더니 "페이스북 같은 것 하지 말라 했더니..." 하며 전화기를 가져간다. 그리고는 모든 것을 public으로 해 놓으면 이런 일이 생긴다며 만져준다.
사실 나는 기계치이며 컴맹이다. 그냥 사용만 할 뿐이지 원리도 모르고 관리할 줄도 모른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지만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하다.
요즘 다윗의 삶을 묵상하고 있다. 다윗이 도망자의 삶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주위의 모든 나라들을 정복하며 승승장구하다가 밧세바와 간음에 빠지고 살인을 저지를 때가 지금의 내 나이와 비슷한 50대 초 중반이다. 다윗에게 견줄 수 없지만 내 삶도 나름 잘되고 있다. 교단총회에서 총 회원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부총회장이 되고, 15년 만에 새로운 집으로 이사하고, 교회도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조금씩 계속 성장하고 있다. 예전같이 몸부림치지 않아도 모든 것이 돌아간다. 때론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잘 돌아간다. 그러기에 나태할 수 있는 상황이고 교만해질 수 있는 상황이다.
편안할 때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하고 잉태사건으로 터졌다면, 나에게는 어제 페이스북 해킹 사건이 터진 것이다. 다윗은 이 상황 속에서 은폐하기 위해 자기의 권위로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를 치열한 전쟁터에 넣어 죽게 한다. 간음이 살인사건으로 이어진 것이다.
나는 은폐할 것이 없다. 그러나 이 사건 앞에서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우연으로 여기면 이것이 은폐이다. 그리고 이 은폐는 어떤 죄로 이어질지 모른다.
그러기에 이 사건 속에서 주님께서 내게 하시고자 하는 의도를 구해야 한다.
해킹을 알려준 분들께 고맙다고 문자로 인사하자 "나도 그런 적 몇 번 있다, 우리 아버지도 그랬다"며 위로해 준다. 또 절대로 모르는 사람의 친구요청은 받아주지 말라는 조언도 해준다. 모두가 따뜻하게 느껴진다.
그렇다. 오늘 나태함 속에 내속에 뿌리내리려는 교만을 이기는 방법은 상대를 이해하고 덮어주는 것이다. "나도 그랬어요" 상대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만드는 것이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겠다.
다윗의 실수를 내버려 두시면서도 나에게는 깨닫게 하시는 주님이 그저 고맙다. 이번 부흥성회를 기점으로 더 주님을 찾고 동행해야겠다. 그리고 내 삶의 무게가 초심에 있어야겠다.
홍형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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