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는 한파로 모든 것을 움츠려 들게 하더니 이번 주에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따스한 봄이다. 이 따스함에 나무들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복숭아나무에는 분홍빛 꽃이 가지마다 밝히고 있다. 그래서 교회에 심긴 과실수마다 가지치기를 시작했다. 가지치기에는 원칙이 있다. 먼저 죽은 가지와 앞으로 열매 맺을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가지를 잘라야 한다. 죽은 가지는 그냥 두면 그곳에 병균이 생겨 나중에 열매 맺을 가지까지 병들게 하기 때문이다. 또 건강하지만 위로 솟거나 가지들 속으로 파고들어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판단되는 가지도 잘라야 한다. 왜냐하면 나중에 다른 가지들이 열매를 맺는데 필요한 영양분을 빼앗아 가고, 그늘을 만들어 열매들로 여물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앞으로 열매 맺을 가지들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 가지치기를 한다. 그중에 대추나무는 새 가지에서만 꽃이 피고 열매를 맺기에 묵은 가지들은 사정없이 잘라내야 한다. 자르다 보니 대추나무가 1/2로 작아진 것 같다. 대추나무도 아프고 힘들겠지만 나 또한 아까운 생각이 든다. 그래도 더 좋은 열매를 위해서는 잘라내야 한다.
누군가가 내 얼굴을 바라보며 얼굴이 상했다고 한다. 부은 것 같다고 한다. 전에는 “우유빛깔 피부”라는 말을 들었는데 요즘 들어 푸석하고 부은 얼굴이다. 전화기에서 소환되는 4,5년 전 사진을 보면 변질된 얼굴이다. 왜 그럴까? 나이 탓도 있지만 아내는 스트레스가 많기 때문이란다. 사실 요즘 내 생각대로 안 되는 것들이 많다. 심지어 기도하며 바랬던 것들마저도 안 되는 것들이 많다. 내 힘으로 어쩔 수 없기에 발만 동동 구르게 하는 것들이 많다.
오늘 나뭇가지들을 잘라내면서 문득 하나님께서 나를 가지치기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나의 병든 부분을 잘라내고, “주 안에서 잘될 수밖에 없다는 말”처럼 나의 미래를 아시는 하나님이 나의 성장을 위해 지금은 아깝다고 여김에도 잘라내고 계신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나는 가지치기 앞에 힘들다고 저항하고 항변하는데 신기하도록 나무는 가만히 있다. 전정가위로 작은 가지를 잘라 낼 때도, 톱으로 큰 가지를 잘라낼 때도 나무는 가만히 있다. 오히려 주인을 신뢰하는 듯 잎을 내고 꽃을 피우고 열매 맺을 생각만 한다. 이것이 나무와 가지의 자세이다.
오늘 내게 필요한 것은 신뢰이다. 주를 향한 신뢰이다. 그리고 “나는 주 안에서 잘 될 수밖에 없다”는 고백이다.
홍형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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