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하나님께서 나를 찢으신다고 느껴진다.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큰 그릇이 되도록 나를 찢으심이 느껴진다. 작년 초에 나 자신의 한계와 교회가 새롭게 비상할 때라 여겨져 사임을 발표했다. 그랬다가 성도님들의 반대에 사임을 철회했다. 정말 교회를 사랑해서 떠나려 했고, 정말 교회를 사랑해서 다시 남기로 했다. 남기로 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의 성장에 걸맞게 나를 성장시켜 주시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영적으로, 지적으로 모든 면에서 성장을 기대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토네이도와 허리케인 같은 자연재해로 시작하시더니 안팎의 온갖 문제로, 때론 억울함으로 나를 계속해서 찢으시고 계신다. 이것은 결코 내가 원하는 방법이 아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지난 10개월 동안 나를 이렇게 찢고 계신다.
어제는 나의 신앙생활 가운데 가장 행복했을 때가 언제였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찢기는 것이 힘들다고 느껴서인지 가장 행복한 때를 묵상케 한다. 가장 행복한 때는 내 마음에 교회만 있을 때였다. 몇 명 안 되는 성도님들이지만 어떻게 하면 이들이 하나님을 진실되게 예배하도록 도울 수 있을까? 그래서 예배에 방해가 되는 것들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도는 물론 일찍부터 환기도 시키고 물청소 같은 노동을 하면서 기뻐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성도님들을 심방할 때 기뻤다. 예수님을 섬기듯 예수님의 신부인 교회를 섬길 때 기쁘고 행복했다.
아담은 하와를 보고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라고 고백하며 사랑했다. 신부인 하와가 자기 몸의 일부인 갈비뼈로 만들어졌기에 죽을 줄 알면서도 선악과를 먹으며 사랑했다. 그런데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은 교회가 예수님의 신부라고 한다. 첫 아담은 자기 몸의 일부로 신부인 하와를 만들었지만,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물과 피를 쏟으심으로, 몸의 일부가 아닌 생명을 내어줌으로 자기의 신부인 교회를 탄생시켰다(행 30:28). 그래서인지 보이는 교회를 섬기면 보이지 않는 예수님이 기쁨을 주신다. 그리고 신부인 교회를 섬기는 것이 신랑이신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기에 교회는 예수님을 향한 나의 사랑과 헌신을 고백하는 곳이다. 그리고 이때 기쁨이 임한다.
10개월 전 성도님들과 상의 없이 교회를 떠난다고 했을 때 성도님들이 놀라고 상처를 받았다. 아마 배신감을 느끼신 분도 있을 것이다. 교회를 사랑해서 떠난다고 했어도, 나에게는 그럴듯한 명분이 있는 떠남이었어도 이것은 분명 교회에 아픔이었다. 그래서 교회를 아프게 한 나의 행동은 교회를 사랑하는 예수님을 아프게 한 것이다. 이런 묵상 속에서 내가 할 말은 “교회를 아프게 해서 죄송하다는 말과 교회를 더 사랑할게요” 밖에 없다. 그리고 찢어짐은 더 큰 그릇이 되어 무조건 교회를 더 사랑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예수님의 신부인 교회를 더 사랑할 수 있다면 더 찢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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