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Search

12.18.22 목양실에서 (Word's Form the Pastor)

영성일기.


오늘 전도자는 "때"를 이야기한다. 죽을 때, 치료할 때, 세울 때, 넘어질 때.. 만사가 때가 있다고 한다. 전도자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단순히 때를 알고 순응하자는 것인가?


오늘 점심에 어느 집사님 부부와 식사 교제했다. 휴스턴에 사시는 이유가 교회 때문이라 하신다. 목사가 듣고 싶어 하는 고백 중 하나이다. 이런 엄청난 고백에 감동되어 내 자신을 무장해제하고 내 속 이야기를 했다.

내년 4월이면 우리 교회를 섬긴 지 20년이다. 이제까지 20년이 되면 선교 갈 것이라며 버텼다. 그런데 한 달 전 이권율 목사님이 찾아와서는 쉼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야기를 나누는 중 쉼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운영위원회와 상의 후 풀타임 사역자에 한해 7년 이상이 되면 6개월간 안식년(1/2 사례비 지급)을 주기로 했다. 이권율목사님과 이야기를 들으며 내 스스로 내린 결정은 지금은 선교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운영위원회 이야기하며 들은 생각은 앞으로 몇 년 동안은 목회에 전념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무장해제하고 집사님께 선교 가고 싶었는데 그것도 내 맘대로 안된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랬더니 집사님께서 지난 주일 말씀을 이야기하며 목사님은 다윗의 인생에 비교하면 아둘람 시즌이라고 한다. 예루살렘 시즌으로 12지파를 다스리는 시기가 아니라 아직도 바삐 쫓기며 준비하는 아둘람 시즌이라는 말이다.


이야기 도중 전도자가 말한 "때의 중요성"이 깨달아졌다. 때의 중요성은 때를 아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 중요한 것은 어떤 때에든지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때만 아는 자는 똑똑한 사람은 되어도 지혜자는 될 수 없다. 때를 분별함과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과 동행하는 자만이 참된 지혜자다.


성경은 다윗을 만민의 증거자, 모델로 세웠다고 한다. (사 55:3,4)

그 이유는 양을 치던 베들레헴 시즌이든, 골리앗을 넘어뜨린 기브아 시즌이든, 사울 왕에게 쫓기던 아들람 시즌이든, 남유다의 왕이 된 헤브론 시즌이든, 이스라엘 왕이 된 예루살렘 시즌이든 변함없이 하나님만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 또한 목회냐, 선교는, 은퇴냐...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늘 내가 주님을 바라보고 있느냐, 주님을 의식하고 동행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그래야 오늘이 값진 것이 된다. 헛되다는 말을 안 한다.


주님... 주님만 바라보게 하소서. 주님과 열방을 섬기게 하소서. 주님과 그 땅을 밟게 하소서.


홍형선 목사

5 views0 comments

Recent Posts

See All

3.3.24 목양실에서 (Word's Form the Pastor)

영성일기 ”십자가에는 손잡이가 없다“ 김문수 목사님이 새벽예배 시에 인용한 문구이다. 크고 무거운 여행가방에도 손잡이가 있고, 작은 도시락 가방에도 손잡이가 있다. 대다수 모든 것들에는 사용하기 편하게 손잡이가 있다. 그런데 십자가에는 손잡이가 없다. 딸아이가 수단난민학교를 섬기기 위해 이집트로 떠났다. 이번에는 아내가 동행해 주기에 마음 편하게 보낼 줄

2.25.24 목양실에서 (Word's Form the Pastor)

억지로 진 십자가 구레네 시몬이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왔다. 구레네(리비아)에서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오는 경비를 위해 몇 년간 아껴 쓰며 준비했을 정도로 그는 헌신적이고 신실한 사람이었다. 어렵게 왔기에 예루살렘에서도 그 누구보다 보는 것과 듣는 것마저도 조심하며 하나님을 찾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흉악한 죄를 짓고 십자가를

2.18.24 목양실에서 (Word's Form the Pastor)

영성일기. 2월 15일 오늘 큐티 본문에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러 가신다. 제자들에게 기도를 부탁하신 후 돌 던질 거리만큼 떨어져 혼자 기도하신다. 얼마나 간절한지 기도 소리가 제자들 귀에 쟁쟁히 들려온다. “할 수만 있다면 내게서 이 잔을 옮겨 달라”라고 기도하신다. 십자가를 피해가고 싶고 십자가를 지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