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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24 목양실에서 (Word's Form the Pastor)

영성일기. 1월 24일

     

지난 주일은 우리교회가 세워진 지 44년이 된 날이다.

휴스턴에도 성령 충만한 교회가 세워졌으면 좋겠다는 비전을 품고 기도하던 여성들 몇 명에 의하여 1980년 1월 셋째 주에 우리교회는 세워졌다. 주일 오후에 교회개척을 위해 헌신하신 권사님께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자마자 기쁘다면서 우시기만 한다. 기쁜데 왜 우시냐고 했더니 마음을 추스른 후 “교회를 생각하면 그냥 감사하다”라고 하신다. 권사님의 눈물과 기쁨 속에서 우리교회의 역사가 보였다. 우리교회의 역사는 부흥과 고난과 회복의 역사이다. 한때는 휴스턴지역에서 영향력도 있었지만 존폐 위기의 시간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큰 교회는 아니어도 모든민족, 모든세대, 모든언어의 비전 속에 한마음으로 예배하고 예배의 능력으로 다음 세대와 함께 열방에 선교사들을 파송하고, 난민학교들을 세우면서 주님의 다시 오심을 사모하는 선교하는 교회가 되었다.

     

오늘 한 아기가 태어났다. 역사 이래로 2주 간격으로 3명의 아기가 태어났던적이 없는데 3명의 아기가 태어났고 한 달 안에 두 명의 아기가 더 태어날 예정이다. 이렇듯 영유아부부터 모든 교육기관과 이엠과 스페니쉬 예배까지 모두 성장의 소리가 들린다. 정말 감사하다. 44년 전에 20대 후반의 젊은 엄마들의 기도와 헌신이 없었다면 오늘 이런 우리교회가 존재할 수 있을까? 10년 이상 되는 어려운 시간들, 시간이 갈수록 함께 예배하던 지체들이 교회를 떠나가고 교회의 부동산들이 사라져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 자리를 지켜야 했던 소수의 헌신자가 없었다면 오늘의 이 기쁨이 있을수록 있을까?

     

요즘 주일에 느헤미야서를 나누고 있다. 느헤미야 3장에 보면 예루살렘 성벽 재건에 참여한 75명의 명단들이 나온다. 그리고 3장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그다음”이다. 29번 나온다. 이 뜻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이어진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누가 일정 기간에 성벽을 쌓았으면 쌓여진 성벽 위에, 그 다음 사람이 이어서 성을 쌓았다는 것이다. 예루살렘 성벽은 이렇게 42등분하여 서로가 연결하여 쌓은 것이다. 44년 된 우리교회도 마찬가지이다. 교회를 개척한 성벽에 부흥의 성벽이 이어지고, 여기에 고난의 성벽이 이어지고 고난의 성벽에 회복의 성벽이 이어져 오늘의 휴스턴순복음교회가 된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44년의 역사 속에 특별히 나에게 21년이란 시간을 주시면서 성벽을 잇게 하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이 시간의 성벽에 누군가가 성벽을 이어 나갈 것이다. 이렇게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한덩이가 되어 휴스턴순복음교회라는 성벽이 완성되는 것이다. 결코 지난 시간의 역사가 없이 오늘이 없다. 개척의 때도, 부흥의 때도, 고난의 때도 그 자리에 헌신한 손길로 인해 오늘이 있고 내가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내게 주어진 것은 충성뿐이다. 한분 한분의 얼굴들이 고맙다. 개척한다고 외롭게 기도하며 헌신하던 29살의 젊은 엄마도 고맙고, 기나긴 아픔 속에서 홀로 성전에서 철야하던 전임 사모님도 고맙고, 그런 교회 다니냐는 비웃음 속에서도 자리를 지켜주었던 이름없는 선배님도 고맙다. 세월이 지난 후 나 또한 후배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성벽을 쌓고 연결해 본다.

주님, 기회 주셔서 감사해요.


홍형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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